스포츠 만화, 일본 만화를 만들어낸 주력장르
by 워매니아
2018-03-22 13: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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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만화, 일본 만화를 만들어낸 주력장르

- 비일상적인 육체에서 일상의 현실적 육체로 분화되어 가다


흔히 만화왕국이라 불리는 일본. 2017년이 되자 그 핵심을 이루는 만화잡지의 부수가 줄어들고, 그 줄어든 부분을 전자책 부문이 메꾸어 가는 등의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4조원이 훨씬 넘는 시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일본만화시장을 이루는 만화장르들은 그 시장규모만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그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장르 중 하나가 스포츠 만화다.

 


스포츠 만화, 일본 만화를 만들어낸 주력장르
△ 일본의 다종다양한 만화작품들 가운데서 스포츠 만화는 가장 주요한 장르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일본의 만화잡지들을 들고 조금만 넘겨보면, 다양한 만화장르들을 다뤄야 하는 잡지 특성상 여러가지 장르들의 만화들이 혼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중 스포츠 장르는 잡지를 만들고 내부 작품 구성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장르 중에 하나로, 이른바 필수구성 장르 중 하나이다.

서점에 잠시 들러보면 수작 스포츠 만화들이 가판을 장식하고 있는 걸 쉽게 볼 수 있으며, 장르구조와 공식, 문법도 여러 맥락으로 확립되어 있어서 많은 발전을 이룬 다양한 형태의 스포츠 만화들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중이다. 개개인의 능력으로 강한 라이벌을 타도해가는 정통적인 열혈물 구조에서 부터, 개성강한 인물들을 이끌어가는 리더의 시선으로 바라본 장르구조, 심지어 여성들이 바라보는 BL물 시선으로 해석한 작품도 존재한다.


‘고단샤(講談社)’의 잡지 ‘월간 애프터 눈’에 연재되고 있는 야구만화 ‘크게 휘두르며(大きくふりかぶって)’, ‘쇼가쿠칸(小學館)’의 ‘주간 소년 선데이’에 연재 된 ‘메이져(MAJOR)’, ‘고단샤’의 ‘주간소년 메거진’에 연재되는 축구만화 ‘DAYS’, 일본 대표하는 성인 주간지인 ‘주간 모닝’에 연재되는 프로축구만화 ‘GIANT KILLING’ , 일본을 대표하는 만화잡지인 ‘슈에이샤’(集英社)의 ‘주간 소년점프’에 연재된 ‘쿠로코의 농구(黑子のバスケ)’ ‘아키타 쇼텐(秋田書店)’의 주간잡지 ‘소년챔피언’에 연재 중인 ‘겁쟁이 페달(弱蟲ペダル)’등등, 수많은 걸작 포츠 만화들이 잡지 지면에 절찬리에 연재되고 단행본이 수백만부 씩 판매가 된다. 이후 애니메이션으로 재차 인기를 얻어, 단행본이 또 다시 재판되는 일이 흔히 생긴다.


내부에서 다루어지는 스포츠 경기 장르들도 굉장히 다양하다. 일본의 국민스포츠인 야구와 축구1)는 물론이며 스포츠 댄스를 그린 ‘볼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ボ-ルル-ムへようこそ)’나 경정을 소재로 한 ‘몽키턴(モンキ-タ-ン)’ , 스키점프 만화 ‘노노노노(ノノノノ)’ 와 같은 마이너 장르를 다룬 만화조차도 존재한다. 얼핏 드라마를 만들어내기 어려울 것 같은 육상도 많은 숫자의 만화들이 존재할 정도로 굉장히 넓은 스펙트럼을 보인다.


스포츠 만화, 일본 만화를 만들어낸 주력장르

△(좌로부터) 볼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몽키턴, 노노노노


산술적인 성적으로만 보아도 대단한 작품들이 많다. 일본에서 역대 가장 많이 팔린 만화들 순위를 보면, 10위 안에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슬램덩크(SLAM DUNK)’와 아다치 미츠루의 ‘터치(タッチ)’ 가 들어가 있다. 두 작품 모두 농구와 야구장르를 대표하는 걸작만화로 손꼽히는 작품들이다. 그럼 이 만화들은 얼마나 팔렸을까? 한국에도 소개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슬램덩크(SLAM DUNK)’는 단행본으로 31권이 나왔는데, 누적 발매부수가 1억2천만부에 달한다. 작가본인이 이 작품으로 올린 수입은 인세만으로도 수백억원에 달한다. 역시 총 발매부수 순위 10위 안에 들어가는 ‘터치(タッチ)’는 일본 만화역사상 최초로 누적 발매부수 5,000만부를 넘기는 기록을 달성했고, 총 발매부수는 추정 1억부다.2)


사실상 일본만화가 오늘날 세계적 위상을 차지하게 된 것에도 스포츠 만화는 큰 공헌을 하였다. 


1960년대, 전후의 빈곤을 겪고 본격적인 경제성장기에 들어선 사회에서 이제 아이들은 여가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런 아이들이 여가를 보내는 가장 좋은 오락거리 중 하나가 바로 만화였다. 이런 아이들의 시선을 빼앗은 가장 거대한 히트작 중에 명확하게 서있는 두 작품이이 있다. 일본의 국민 스포츠 만화 ‘거인의 별(巨人の星)’(카와사키 노보루 / 카지와라 잇키 작)와 ‘내일의 죠(あしたのジョ-)’3) (치바 테츠야 / 카지와라 잇키 작)이다. 이 두작품의 거대한 히트는 만화는 아이들이나 보는 변경의 매체가 아니라 국민 전체가 보는 거대한 하나의 매체라고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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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만화 잡지가 국민전체가 보는 거대한 오락으로 자리잡았음을 알리는 거대한 두 작품 ‘거인의 별(巨人の星)’와 ‘내일의 죠(あしたのジョ-)’



만화 왕국 일본의 근간, 주간만화 시스템. 그 시스템이 확립되었음을 알린 거대한 두 히트작


지금 우리들이 생각하는 일본만화를 만들어낸 체제의 중심에는 주간만화잡지 시스템이 존재한다. 일주일에 한번씩 20여개의 연재만화가 들어간 주간잡지가 정해진 요일에 나온다. 이 연재분을 모아서 단행본을 내고 이것을 통해서 이윤이 만들어진다.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서 더욱 많은 독자를 확보해서 이윤을 극대화한다.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체제이다.


이런 잡지체제의 시발점이 되는 것은 거대 출판사 ‘쇼가쿠칸(小學館)’이 발행하는 ‘주간소년 선데이(週刊少年サンデ-)’와 역시 거대 출판사인 ‘고우단샤(講談社)’가 발행하는 ‘주간 소년메거진(週刊少年マガジン)’ 이다.4)


1959년에 가장 먼저 주간만화잡지를 시작하고, 만화의 신이라 불리는 ‘테츠카 오사무(手塚治蟲)’를 위시한 일련의 작가를 영입하여 두각을 나타낸 것은 주간소년 선데이였다. 주간소년메거진은 고전을 하지만, 오사카 등지에서 활동하던 “아카혼 망가”5) 작가들을 영입하여 극화하는 새로운 스타일을 가진 작품들을 만들어내면서 크게 발전하기 시작한다. 이후, 고단샤는 두개의 만화를 대히트 시키면서 일본 만화 업계에서 최초로 주간 100만부 출간신화를 달성한다. 혹자는 이를 만화가 일본 안에서 시민권을 얻어낸 순간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두 작품은 이미 말했듯이 ‘거인의 별(巨人の星)’와 ‘내일의 죠(あしたのジョ-)’이다.


1966년부터 1971년까지 주간 간격으로 연재된 야구만화 ‘거인의 별’은, 야구감독이었던 아버지에 의해서 오로지 야구를 위해서만 길러진 주인공 ‘호시 휴우마’가 어린시절부터 가혹한 훈련을 견디고 프로세계에 들어가, 투수로 대활약을 한다는 내용이다. 라이벌인 ‘하나가타’와 마구로 승부를 하는 등 내용 자체는 마치 초능력자들의 대결을 연상시키는 측면조차 있다.

재능이 없는 사람이 가혹한 훈련을 눈물과 의지로 이겨내고 대활약을 한다는 스포츠 근성물의 대표작 중 하나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런 대결구도가 이후 ‘드래곤 볼’ 등의 일본 소년만화의 전형을 이루게 만들었다는 의견도 있다. 또한, 아버지가 법상을 엎는 장면이나 공중에서 빙그빙글 돌면서 슬라이딩을 하는 장면이 유명하다. 잡지 연재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린 이 작품은 1970년 1월 10일 애니메이션화 되었고, 36.7%라는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또 하나의 작품인 ‘내일의 죠’ 는 스포츠 만화의 범주를 넘어선 작품이라고 독자와 평론가에게 회자되어진다. 또한,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일본 만화 전체에 수많은 영향을 미친 작품이며, 일본의 만화 역사를 논할 때도 빼놓을 수 없는 위대한 작품으로 꼽힌다. 1968년부터 1973년까지 잡지를 통해 연재되면서 20권의 단행본이 나왔다. 그리고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으로 꼽히는 ‘데자키 오사무’에 의해 애니메이션화 되어 31.6%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애니메이션 또한 만화에 버금가는 명작으로 꼽히고 있다.


내일의 죠는 혼혈아라 차별받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던 ‘야부키 죠’가 복싱이라는 스포츠와 만나고 인생의 라이벌 ‘리키이시’와 싸우면서 위대한 복서로 성장해나간다는 내용이다. 아마 만화팬이라면 ‘야부키 죠’가 모든 것을 불태워서 싸웠음을 상징하는 하얀 모습으로 링에 기댄 채 앉아있는 마지막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은 일본의 극좌도시게릴라 적군파가 일으킨 여객기 납치사건 ‘요도호 사건’당시 테러범들은 “우리는 내일의 죠가 된다!” 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만화를 넘어서 사회적 영향을 미쳤고, 작품 등장인물인 ‘리키이시’가 작품 내에서 죽었을 땐 팬들이 그의 장례식을 실제로 열어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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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의 죠’의 등장인물 ‘리키이시 토오루’가 작중에서 무리한 감량과 시합으로 사망하자, 팬들이 그의 장례식을 실제로 열어주었다.
작품의 엄청난 인기를 반영하는 일화다.


또한, 이 두 만화는 일본의 고도성장기의 상징과도 같은 만화이다. 이를 악물고 맨주먹으로 무언가를 이룩해내는 정신승리의 극한을 보여주는 주인공들은 패전으로 초토화된 터전에서 다시 전쟁 이전의 생활을 되찾으려고 산업전선 곳곳에서 기업전사라고 불리며 투쟁했던 일본인들은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시기의 스포츠 만화들은 만화적인 상상력에 기댄 묘사가 상당히 많았다. 상대방이 칠 수 없는 마구가 등장하거나 닌자 만화에서나 볼법한 괴상한 격투기술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리얼함의 극한을 보여준 ‘내일의 죠’도 크로스 카운터나 더블 크로스 카운터 등으로 만화적인 상상력이 한껏 들어간 시합장면이 등장하였다.



극한의 남자 정서에서 순수를 지향하는 도시소년 정서의 세계로. 일본의 국민 야구 만화 [터치]


1980년대가 되자 이제 세대교체가 벌어지고 사회는 고도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안정을 이루었다. 이제 사람들은 거친 사회에서 투쟁하는 듯이 살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을 가진다. 그리고, 좀 더 개인의 영역에서, 삶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된다. 스포츠 만화에서도 이 시대를 반영하는 작품이 등장한다. 1981년 주간 소년 선데이에 연재가 시작되어, 1986년에 완결된 청춘 야구만화 ‘터치’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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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스포츠 만화의 전설로 1980년대를 대표하는 일본 국민만화인 아다치 미츠루의 ‘터치’.

혹자는 극한의 남자 만화로 구성된 고단샤 만화 라인업에 대비되는 도시소년들의 정서를 보여주는 좋은 예로 들기도 한다.


1980년대는 전세계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의 엄청난 경제적 호황기이며, 일본 또한 그러했다. 당시 전세계 상위 50개 기업 중 33개가 일본 기업이었고, 미국은 자동차 산업과 전자산업 등 제조업 부문에서 최고의 자리를 일본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이런 일본의 경제의 변화는 일상생활과 정서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낙천적이고 화려한 분위기가 사회에 흐르기 시작고, 경제적 부는 더 많은 여가를 가져오고, 자신들의 내면에 대해서 좀 더 들여다보고 생각할 여유를 주었다. 전쟁이나 기아와 같은 극단적인 경험들은 점차 책 안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되었고, 삶을 반추하는 일상이라는 개념이 확립되어 간다.

이런 경향들은 스포츠 만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극단적인 육체 학대를 통해서 자신을 단련하고, 단련된 육체들의 격돌의 장이 과거 스포츠 만화에서 묘사되었다면, 1980년대를 대표하는 만화인 아다치 미츠루의 ‘터치(タッチ)’는 경제적인 부와 사회변화를 반영하며, 변화한 도시소년의 정서를 크게 어필해 대히트를 기록하였다.

내용은 일본 국민들이 열광하는 고시엔 고교야구대회를 둘러싼 야구 만화다. 하지만 이건 겉모습만 그러하고 정작 핵심적인 내용은 세 명의 남녀를 둘러싼 전형적인 연예물이다. 물론 야구경기나 야구를 둘러싼 여러가지 디테일이 충실하기는 하지만 스토리텔링 자체에서 가장 무게를 두는 묘사들은 남녀 간의 심리묘사에 있다.

당연히 가혹한 육체적인 혹사도 등장하지 않으며, 주인공에게 “이것이 아니면 나는 죽는다.”식의 피 끓는 절심함도 없다. 애초에 주인공 타츠야가 야구를 시작하는 동기도 연예대상인 여자 주인공 미나미 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스포츠 만화는 1990년대 등장한 한 만화에 의해 다른 흐름이 나타나게 된다. 한국에도 수많은 팬을 가진 만화이자 스포츠 업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말할 수 있는 만화, ‘주간 소년점프’에 연재되었던 이노우에 타케히코의 작품 ‘슬램덩크’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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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램덩크’는 이전의 만화와는 다르게 경기 자체를 묘사하며 1990년대 일본만화가 이룩한 최고의 경지 중 하나가 된다. 


일본 스포츠 만화가 확립한 기본적인 장르공식을 보면, ‘주인공은 신체적이거나 혹은 사회적인 입장 면에서 타인보다 열등한 존재다.(정)’ - ‘이것이 비 일상적인 요소(천재 코치와의 만남과 특훈)으로 탈바꿈 시킨다.’ - ‘다른 존재가 된 주인공이 이전에는 질 수 밖에 없는 게임에서 승리하며, 주변의 관계는 이에 따라 바뀌고 주인공은 바뀐 질서의 주인공이 된다.(합)’의 구조이다.

그러나 슬램덩크는 이런 공식에서 조금 먼 지점에 있다. 1990년대의 소년들이나 청년들은 이제 과거 세대의 성장신화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였으며, 스포츠는 연예나 공부나, 친구와의 우정 같은 일상을 포기하지 않으면 좋은 성적을 올리기 어렵다는 걸 잘 안다. 그리고, 프로야구 세계에도 월등한 신체조건을 지닌 외국인들이 들어와 더욱 큰 활약을 하는걸 보고 컸으며, 다른 나라의 수준 높은 시합들을 많은 경로로 보면서 자란다. 이런 그들에게 과거 세대의 눈물과 땀, 우정과 헌신만으로 스포츠 세계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큰 재능이 필요하고, 재능이나 재능을 발전시키는데 는 큰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시대의 히트작 슬램덩크의 주인공 강백호(일본 원작의 본명은 사쿠라기 하나미치)가 가진 가장 큰 재능은 무한한 노력이나 타인을 끌어들이는 리더쉽 같은 인간적인 재능이 아니다. 큰 키와 스테미너와 운동신경, 즉 타고난 신체조건이다.

스포츠 경기 자체도, ‘ 캡틴 츠바사(キャプテン翼)’6) (다카하시 요이치 작)나 ‘링에 걸어라(リングにかけろ!!)’ (쿠루마다 마사미 작)처럼 마법이나 초능력에 가까운 기술들의 향연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등장하는 라이벌들도 프로선수를 능가하는 곡예같은 능력가진 사람들도 아니다. 슬램덩크에서 농구경기는 실재 농구경기와 지식에서 기반한, 현실적인 물리법칙과 육체가 부닥치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결말도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맞이하는 한 고난. 바로 신체적 부상에서 재활하려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끝이 난다. 그리고 다른 일본 만화들과 다르게 그의 팀은 전국대회에서 우승하지도 않는다.


슬램덩크가 크게 시대의 방점을 하나 찍었지만, 시대는 또 다시 변화해간다. 슬램덩크도 이제 젊은이들에게는 이전 세대의 전설로 회자되는 만화가 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 일본 만화 콘텐츠의 경향은 오오츠카 에이지의 정의를 빌려 ‘거대서사의 종언’ 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독자들은 이전 만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세계챔피언이 된다거나 국가를 대표해서 국위를 선양하겠다는 목적에 그렇게 큰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사회가 지극히 다양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국가적인 이데올로기가 개인에게는 그다지 설득력을 가지게 되지 않는 탓이다. 당연히 스포츠 만화 안에서 다루어지는 양상도 변화를 맞이한다.

여기에 ‘히구치 아사’의 야구만화 ‘크게 휘두르며(おおきく振りかぶって)’와 ‘야스다 츠요시’가 그린 ‘데이즈(DAYS)’ 를 소개해보자. 


 스포츠 만화, 일본 만화를 만들어낸 주력장르

△ (좌) 크게 휘두르며, (우) 데이즈


‘크게 휘드르며’는 2003년 ‘월간 애프터 눈’에 연재가 시작되어, 단행본이 누계 1000만부를 돌파하며, 현재도 연재중인 작품이다. 이 만화는 2000년대 부터 일본 소년만화계에도 대규모로 유입된 여성층에게도 상당한 인기를 얻는 만화이고 이 인기의 비결이 기존 스포츠 만화와는 다르게 조금 재미있다. 그것은 오로지 남자들이 주된 주인공으로 활약하던 남자들 스포츠 공간에 여성만화적인 시점을 도입한 것으로, 바로 보이즈 러브(BL)만화적인 시선이다.

작가인 히구치 아사는 여성이고, 여성적인 시각으로 다룬 BL만화를 하고 싶었으나, 편집진이 난색을 표명했고 이에 대한 우회적인 방법으로 스포츠 만화에 BL요소를 결합한 작품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 작품에는 강한 개인이 주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포수와의 관계에 의존하면서 자신을 지탱해가는 여린 개인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작품을 그린 히구치 아사는 대학에서 스포츠 심리학을 전공하였고, 일본 고교야구팀들의 시합에 발길을 옮겨 꼼꼼하게 취재하였다고 한다. 만화에는 이런 작가의 배경과 취재노력이 더해지면서 현실적인 야구시합이 디테일하게 묘사된다. 또한, 아주 알기 쉽게 야구의 각종 룰과 팁을 소개하면서 야구에 접근하는 문턱을 한껏 낮추었다.


또 다른 작품인 ‘데이즈(DAYS)’는 그야말로 지금의 일본 청소년의 시점으로 축구에 접근한다. 주인공은 조금도 축구에 재능이 없다. 성격도 활달하고 자신감에 차있지 않다. 수줍어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힘들어 하며 유약하다고 불리는 현재의 일본 청소년의 전형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음지에서 재능 있는 사람들에게 뒤처지지 않게 노력한다. 물론 원래 재능과 신체적인 메리트가 없는 그는 그다지 실력이 늘지는 않는다. 하지만 주변 동료들이 그에 감복하여 노력하고 이것이 결국 팀을 승리로 이끄는 동력이 되어간다. 수업에서 선생에게 질문을 못할 정도로 타인 눈에 띄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어떤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닌 사람 즉, 지금 일본 젊은이들의 심리가 한껏 반영된 재미있는 작품이다.

 


맺으며


일본 스포츠 만화의 발전은, 위의 글에서 본 바와 같이 패전 이후의 경제발전 - 1980년대의 호황기 - 1990년대의 버블붕괴 - 2000년 이후의 거대서사 종언과 극히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발전해왔다. 글에서 미처 다루지 못할 정도로 많은 걸작 스포츠 만화들이 존재한 것이 일본 만화업계다. 언젠가, 이 육체가 부닥치는 경연의 장을 다룬 다른 걸작 만화들도 소개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1) 일본 고교 야구부의 선수 숫자는 계속 줄어들고 있지만, 축구부원은 꾸준히 늘고 있는 중으로, 야구가 가지는 위상이 조금씩은 빛이 바래고 있다.

2) 참고로 일본 만화 역사상 가장 많은 발매부수를 자랑하는 작품은 ‘원피스’로 3억 2천만부가 팔렸다. 다만, 원피스는 80권 만에 세운 기록으로, 비교적 적은 권수를 가진 작품들과 비교가 된다.

3) 한국에서는 ‘도전자 허리케인’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4) 전자는 일본을 대표하는 만화 중 하나인 ‘도라에몽’과 ‘포켓몬스터’, ‘이누야사’, ‘H2’등의 라인업을 가진 회사이고 후자는 ‘진격의 거인’, ‘시마과장’, ‘아키라’등의 라인업을 가진 회사다.

5) 한국에도 존재하는 대본소 만화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카혼은 붉은책을 의미하고, 당시 대본소 만화들은 책의 테두리를 붉은색으로 칠해뒀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라고 한다.

6)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축구만화다. 중남미 등의 외국 축구선수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워매니아
이현석
만화 기획자. 만화 번역자. 일본 스퀘어 에닉스에서 10년, 웹툰 매체 코미코 재팬에서 수석 PD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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