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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리뷰] 집착과 뒤틀린 관계의 백합 "하얀천사에게 안식은 없다"

박성원  |  2019-10-13 18:01:25
 | 2019-10-13 18: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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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성인)웹툰들이 에이전시에 의해 기획되고, 복수의 플랫폼에서 연재하는 요즘에, '레진코믹스'라는 특정 플랫폼을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이유가 있다면 역시 백합 장르 때문입니다. 백합은 예전부터 한국에서 무척이나 마이너한 장르였고, 백합 만화도 그랬죠. 메이저 플랫폼들 중에 백합을 장르 분류에 끼워주는 경우도 거의 없으니 웹툰 전성시대를 맞이한 지금도 백합 만화의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셈입니다. 반면에 레진은 초창기부터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양질의 백합 웹툰을 꾸준히 공급한 플랫폼으로, 해당 장르의 매니아로서 나름대로 고마움과 애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얀천사에게 안식은 없다 썸네일

"하얀천사에게 안식은 없다"는 최근에 가장 눈에 띄는 백합 웹툰 중 하나로, 장르 자체의 결핍이 아니더라도 준수하고 개성있는 작화, 자극적인 소재와 전개 등이 장점인 작품입니다. 줄거리를 간단하게 살펴보지요.

이 작품의 주인공은 둘입니다. '다혜'는 작지 않은 규모로 짐작되는 회사 사장님의 딸로, 소위 말하는 금수저입니다. 그녀는 학창시절 '연화'로부터 정서적(혹은 그 이상의?) 학대 내지는 그에 준하는 피해를 받았고, 연화는 결국 소년원까지 가게 됐습니다. 이제 다혜는 아버지의 회사에서 다니며 비싼 옷과 화장품을 자유롭게 쓰는 물질적으로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지만, 여전히 연화에 대한 기억을 잊지 못하고, 또 원한과 집착을 키우고 있습니다. 반면 연화는 소년원에서 나와 그곳에서 만난 '연영'이라는 친구와 동거하며, 비록 부족하지만 안정을 찾아 살아가고 있었고요.

하얀천사에게 안식은 없다 재회

그러던 어느 날 다혜는 회사에서 하청회사 생산공장 시찰을 나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근황을 몰랐던 연화를 만나게 됩니다. 이것이 큰 기회라고 여긴 다혜는 자신이 가진 권력을 이용해 연화와 주변인을 경제적으로 협박·회유하며, 과거의 원한을 복수하려고 하죠.

하얀천사에게 안식은 없다 다혜 단독씬

줄거리만 놓고보면 전화기도 없이 공장에 다니며 좁은 방에서 어렵게 지내는 연화를 금수저인 다혜가 일방적으로 괴롭히는 그런 내용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실제로 그렇지는 않습니다. 일단 연화라는 인물부터가 그렇게 만만한 캐릭터가 아니거든요. 과거가 어땠는지는 본작만 봐서는 알 수 없지만 모종의 이유로 연화는 둘 사이의 관계에서 확고한 정신적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어지간한 일에는 꿈쩍도 안 할 단단한 멘탈의 소유자인 것처럼 보이고, 예의 잃을 게 많지 않은 사람이라 다혜에게 일방적으로 휘둘릴 유인도 크지 않습니다.

하얀천사에게 안식은 없다 연화 단독씬

반면에 다혜는 돈은 많지만 스스로도 감정을 통제하기 어려워하고, 연화와의 과거를 떨쳐내지 못하고 트라우마 비슷한 것을 앓고 있어서, 둘의 관계는 연화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현실에서 돈이 가지는 영향력이 워낙에 막대한 만큼, 학창시절처럼 되지는 않겠지만요.

연화와 다혜, 표면적으로 보이는 둘의 관계도 충분히 흥미롭지만 여기에 물리적인 우위와 정서적인 우위를 뒤집어 놓으면서 이야기를 한 번 더 꼬아놓을 수 있는 여지를 마련했습니다. 더 흥미로운 전개를 위한 영리한 장치인 셈이죠. 여기에 다혜를 주시하는 그녀의 아버지와 언니, 직장 선배, 그리고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 같은 연화의 연인이었던 연영까지. 이런 작품에서 빠질 수 없는 조연들의 역할 역시 기대할 만합니다.

하얀천사에게 안식은 없다 연화 인영 투씬

작화를 짧게 언급하자면 다소 거친 질감의 좋은 퀄리티로, 전체적으로 보면 백합이라는 장르와 이야기에 잘 어울린다는 인상입니다. 이 부분은 직접 확인하시면 좋을 듯하고.

또 한 가지, "하얀천사에게 안식은 없다"는 말하자면 2부에 해당합니다. 전작 "하얀천사에게 날개는 없다"는 다혜와 연화의 학창시절을 다루고 있고요. 두 인물의 과거를 직접 다루고 있는 만큼 2부에 미치는 영향도 지대하지만, 직접 읽어본 결과 꼭 1부를 읽어야 2부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2부의 초반부를 읽는동안 다소 감정선을 따라가기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건 아마 (70편이 넘는)1부의 존재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군요. 어찌됐든 작품을 즐기는 데 크게 문제가 되는 사안은 아닙니다. 코인의 압박을 이겨내고 1부를 먼저 읽는다면 훨씬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겠지만요.
[박성원]
자연주의
웹툰가이드 리뷰필진
장르를 거의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웹툰을 봅니다
백합을 특히 좋아한다는 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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