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귓가에 속삭일 기묘한 이야기, '소곤소곤'
by 박은구   ( 2018-11-02 14:33:18 )
2018-11-02 14: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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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작품소개에 앞서 이 작품의 형식은 옴니버스 형식이다.옴니버스란, 독립된 짧은 이야기 여러 편을, 한 가지의 공통된 주제나 소재를 중심으로 해엮어내는 이야기 형식을 가르킨다. 비슷한 걸로 피카레스크식 구성이 있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피카레스크식도 옴니버스라 할 수 있다. 옴니버스 구성은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중심 인물이나 작은 주제가 편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고, 피카레스식 구성처럼 같을 수도 있다. 대체로 전체적인 주제 및 이야기의 방향만 일치한다면 옴니버스 구성이라 보기에, 사실 저 둘을 구분하는 것은 그리 쉽지는 않은 일이다.


이번에 리뷰해볼 에피소드의 제목은 바로 '화가'이다. 본 에피소드는 1~3화의 분량으로 이루어져 있다. 적다면 적은 분량이지만, 작가의 기량이 뛰어나 완급조절이 매우 능숙하여 보는 내내 아무런 이질감도 느끼지 못했다.


                


성공한 여성화가의 아들인 주인공은 어머니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은 탓인지 그림에 굉장히 뛰어난 재능을 보인다. 그 어머니 또한 자신의 커리어와 또 아들의 재능을 위해 어린 시절부터 아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한다. '네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그려보렴'이라는 말을 들은 주인공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껏 그린다.





아무런 주저없이 순식간에 그림을 그리는 주인공.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하나의 그림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엄청난 재능을 가진 주인공은 무척이나 해맑게 그림을 완성시킨다. 재능이란, 즐기는 자에게 찾아온다는 말이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저 어린아이가 양손으로 붓을 쥔 채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무척이나 예뻐보였다.       

 


보이는 그대로를 그리는 일은 소년에게 있어 그날 이후로 더이상 허락되지 않았다. 소년이 그리고 싶었던 것은 자신의 눈으로 보이는 것 그 자체였다. 자신에게만 보이는 그 형이상학적인 존재들을 그림으로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걸 그리는 순간, 더 이상 소년은 소년 자신의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 것이다. 일종의 사형선고.

 

권위적인 태도의 어머니는 소년을 나무라고, 소년이 장난이라고 말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그를 몰아붙인다. 마치 자신의 아들이 저런 게 보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싶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혹여나 자신이 쌓아온 이미지의 누가 될까봐 그러한 행동을 보인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게 아니라면 왜 저렇게 자신의 아들을 다그치는 것인가. 무슨 죄가 있다고. 그리고 싶은 걸 그리라고 지시한 건 어머니 본인이기에 아이에게 잘못 따위는 없었다. 그 날 이후로 소년은 자신의 그림을 잊어버리고,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그림을 그리는 기계로 전략하게 된다. 어머니의 붓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외에 네가 보이는 것들은 진짜가 아니야." 소년의 어머니는 매일 같이 소년의 귀에 속삭인다. 그것들은 현실이 아니라고, 네가 보고 있는 건 착각이라고. 

몇년이 지나고, 소년의 그림은 서서히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모두의 인정을 받지만, 소년의 얼굴은 전혀 즐겁지 않다. 그건 자신의 그림이 아니니까.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인지하고 있는 것은 소년 본인이다. 이후 참다 못한 소년은 결국 어머니에게 말한다. 더이상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다고,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내가 보이는 것들이 그리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계속해서 반대하고 소년은 그녀를 원망한다는 말을 한 채 그대로 대화가 종결된다.




<솔직히 볼 때 조금 무서웠다. 아니.. 많이 무서웠다.>


마음을 굳힌 소년은 어머니의 말을 무시한 채 자신이 보이는 것들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불러올지도 모른 채. 천천히 붓을 들어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림을 다 그린 소년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로 창가에 올랐고, 그대로 지상을 향해 떨어졌다. 만화에서도 그 명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소년의 양 옆에 소년이 보았던 두 명의 귀신이 서 있었고, 그들의 손을 잡았다는 점을 미루어 보았을 때 그들에게 홀려 투신한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불행중 다행인 것이 소년의 목숨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는 것이다. 소년의 어머니는 다친 소년을 보고 자신을 자책하기 시작한다. 그녀가 왜 그렇게까지 소년의 그림을, 소년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반대한 것인지 그 이유가 그녀의 회상 속에서 나온다. 사실 그녀에게는 언니가 있었고, 그 언니 또한 소년처럼 보이지 않은 것들을 보는 사람이었다. 그런 언니가 매일 괴로워하자 소년의 어머니는 자신의 언니에게 그들을 그리라고 하였고, 그 이후로 그녀의 언니는 점점 미쳐가더니 이내 목숨을 끊어버린 것이다. 그런 엄청난 트라우마를 앓고 있으니 당연히 소년이 그림을 그리는 걸 경계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그러나 그렇게 경계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그림을 그렸고 그 결과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뻔한 사고를 겪게 된다.




소년의 어머니는 결심한다. 자신의 아이만은 결코 허망하게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그래서 집을 옮기고,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집안에 존재하는 모든 종이나 펜, 그림을 그릴만한 도구들은 전부 치운다. 


 


그리고 소년이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의 눈에 붕대를 감는다. 매우 극단적인 조치이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소년은 아마 미쳐버렸을 것이다. 그는 이미 수십 차례 자해를 하고, 목숨에 위협이 갈만한 행동들을 한 상태다. 소년 스스로도 자신의 어머니에게 자신을 구해달라고, 너무 두렵다고 애원했다. 그러나 붕대를 하고 나서도 계속해서 악몽을 꾸고, 보이지 않는 것들이 어둠 속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걸 느끼는 소년의 증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만 갔다. 어느새 어머니가 없으면 일상적인 생활조차도 못하는 지경에 이러버린 소년. 그런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며 어머니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이 소년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망가트려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자신이 소년의 곁에 있으면서 그가 하고 싶은 그림을 마음껏 그리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대체 무엇이 있을지.


"엄마가 꼭 찾아줄게." 라고 그녀는 말한다. 소년이 두려움에 떨지 않도록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그러나 그런 약속을 한 지 얼마되지 않아 소년의 어머니는 그해 겨울,



더이상 그녀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소년을 홀로 남겨둔 채로, 이후 2년 뒤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모든 걸 극복하여 성공한 소년의 그림 전시회를 마지막으로 '화가' 에피소드는 끝이난다. 

혹시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까? 정말 결말이 이게 끝이야? 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허나 이 작품을 꼼꼼히 봤다면 혹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이미 깨달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머니 없이는 아무런 일상생활도 못하던 소년이 과연 어떻게 그것을 극복해낼 수 있었을까, 어머니가 소년에게 했던 말들이 의미하는 것은? 또한 그런 얘기를 남기고 그녀는 왜 하필  그 타이밍에 원인불명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을까.


잘 생각해본다면 그 해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래의 작품은 소년의 전시회에서 가장 아끼는 작품이라고 한다.



 

<작품명: 어머니>

박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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