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신을 위하여·피치 : 마운드의 여왕>, 변화와 가능성에 대한 긍정
by 자연주의
2018-06-20 10: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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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글의 제목에 나온 작품은 두 개입니다. 작가는 동일하고요. 하나는 '피치 : 마운드의 여왕'이라는 제목이고 다른 하나는 '야신을 위하여'입니다. 전자는 완결작이고 후자는 아직 연재 중이며, 플랫폼도 각자 다르죠. 공통점이 있다면 '고교 야구'라는 소재와 (제가 생각하는)주제 의식입니다. 공통점도 많지만 그 이상으로 차이점도 많은 두 작품을 하나의 리뷰글에서 다루는 건 소재보다는 주제와 테마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에요. 약 2년의 간격을 둔 동일 작가의 작품인 만큼 장단점이 비슷하기도 하고요. 제법 많은 리뷰글을 적어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조금 어색할 수도 있겠습니다.


언제나처럼 간략하게 줄거리를 소개하며 시작하지요. 당연하지만 다루는 작품이 둘인 만큼 소개할 줄거리도 둘입니다. <피치:마운드의 여왕>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여자 야구선수입니다. 성별을 나누어서 여자들끼리 경기를 치루는 대회에 속한 선수가 아니라, 남자들과 동등하게 경쟁하는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야구선수이지요. 작가의 후기에 따르면 한국 최초의 여성 야구선수 '안향미'를 모티브로 삼았다고 하는군요.



선미는 어릴 적에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우연한 기회에 공을 던지고 야구에 흥미를 느끼며 아예 야구부에 입단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녀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차원'이라는 소년이 - 물론 그도 야구부입니다 - 있었고요. 어찌어찌 해서 둘은 갈라져 각자 다른 학교에서 야구부 선수로 활동하게 되는데, 전국 협회에 유일하게 이름을 올리고 있는 여고생 야구선수 라는 타이틀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선미는 좋은 대접을 받고 있는 듯해요. 방송사에서 그녀만을 스포트라이트 하는 방송을 기획하는가 하면, 경기에서 패배하고 난 다음의 체벌에서 혼자만 빼주기도 하고, 경험이 전혀 없는 데도 갑작스럽게 주전 투수의 자리에 오르기도 하죠.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듯 선미를 '야구 선수'로서 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죠. 선미는 유일한 '여자' 야구선수로서 여기서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야구 선수'가 아닌 '여자'입니다. 외부적으로 그녀는 학교와 구단의 이미지 메이킹 그리고 방송국의 시청률을 위한 도구일 따름입니다. 당연히도, 같은 야구부의 고교 선수들 역시 선미를 조금도 동료로 대접하지 않고 따돌리기 바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미는 갑작스레 고교야구 대회에서 주전 투수로 서게 되는데, 여기서 같은 팀의 - 적팀이 아니라요 - 야비한 계략에 휘말려 치욕을 당한 다음 사실상 야구 선수의 꿈을 접게 됩니다. 선미는 불현듯 다른 학교에서 야구부 선수로 뛰고 있는 차원을 보러 가는데요. 차원이 활동하고 있는 고교의 야구부도 상태가 말이 아니었고, 선미는 이야기의 법칙에 따라 그 야구부에 합류하게 되지요.



<야신을 위하여>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촉망받는 고교 야구선수인 '우승호'가 몸담고 있는 야구부는 경기 도중 감독이 뇌물 혐의로 체포당하는 불미스러운 일을 겪게됩니다. 이때 경기장 관중석을 청소하던 남자가 갑자기 감독을 자처하며 나서는데요. 이 남자는 과거 '야신'이라고까지 불리던, 현역 시절은 물론이고 감독이 되어서까지 전설적인 기록을 쌓아올리다, 한순간에 뇌물 문제로 야구계에 퇴출당한 '최진'이라는 인물입니다. 임시 감독이 된 그는 신묘한 전술로 패색이 완연하던 승호의 팀을 승리로 이끄는가 싶었지만, 투수인 승호의 누적된 피로와 부상 위험을 이유로 승호를 마운드에서 쫓아내며 결국 패배하게 됩니다.



선미와는 달리 승호 본인은 자타가 인정하는 대단히 뛰어난 야구선수이지만, 그가 속한 '병문고'의 야구부는 그렇지 못합니다. 부원들의 실력은 하나같이 승호에게 믿음을 주지 못할 정도로 형편없고, 이제는 심지어 감독을 잃어 야구부가 해체당할 위기에 놓였지요. 학교 또한 모종의 이유로 어떻게든 야구부를 끝장내려고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지난한 상황 속에서 야신은 병문고 야구부의 감독을 자처하고, 처음에는 승호와 야구부를 적대하는 학교와 격렬한 갈등을 빚지만 결국 병문고는 야신을 새로운 감독으로 받아들이게 되지요.


이렇듯 상당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두 웹툰을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변화와 가능성에 대한 긍정'입니다. <피치:마운드의 여왕>에 등장하는 주인공 선미와 야구부, <야신을 위하여>에 등장하는 승호와 야구부 모두 작품이 시작하는 시점에서는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게 없는 아주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건 단순히 야구부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물론 성적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모든 게 엉망인 거죠. 뭔가 더 나아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주변의 응원과 지원은 커녕 야구를 계속할 수 있기나 하면 다행이고, 가장 중요한 경기를 뛰고 있는 당사자들의 마음 역시 갈팡질팡합니다.


마찬가지로 두 작품은 이야기를 시작하는 동시에 '변화'를 같이 시작합니다. <피치:마운드의 여왕>에서는 선미가 성차별과 편견, 독단으로 가득한 기존의 야구부를 뛰쳐나와 옛 친구인 '차원'이 있는 새로운 야구부에 자리를 잡았고(물론 이곳에서 '야신' 못지않게 훌륭한 감독님이 계셨습니다), <야신을 위하여>에서는 승호와 병문고 야구부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단숨에 꿰뚫어 볼 수 있는 '야신'이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했죠. 


두 야구 웹툰에는 예의 '나쁜 어른'들이 여럿 나오기도 합니다. 이들은 아이들의 가능성을 믿지 않거나, 아예 외면하기도 해요. 반대로, 야신처럼 변화의 가능성을 굳게 믿고 아직 깨닫지 못했을 뿐인 이들을 이끄는 좋은 어른도 있습니다. 한편으로, 두 주인공과 야구부에 속한 선수들 역시 괜찮은 인재들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신뢰하고, 더 나아가 서로를 격려하며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죠.


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또 한 가지 강조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과정의 중요성입니다. 조금 뻔한 얘기이긴 하지만, 승패가 명확하게 갈리고 1등만이 빛날 수 있는 프로 지향의 스포츠에서는 그만큼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죠. 부정이나 불법 행위처럼 당연히 배척해야 될 잘못들을 넘어, 우리가 땀을 흘리고 육체적인 고통을 자처하며 마운드를 달리는 이유를, 결과와 승리 이전에 과정 속에서 온전하게 성취해야 될 것들을 살펴봅니다. 단지 공이 좋아서 초중학생 때부터 배트를 휘둘러 온 아이들이 전국대회 우승 같은 목표에만 파묻혀 눈물을 흘린다면, 그보다 더 슬픈 일도 없겠지요. 


이 모든 주제의식을 다루는 이야기의 형태와 완성도는, 모범적이면서 동시에 고전적입니다. 둘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죠. 모범적인 이야기란 오래 전부터 검증되고 다뤄진 이야기인 만큼 고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긍정과 부정, 두 가지 요소를 동시에 담고 있는 셈인데, 황지성 작가의 두 야구 웹툰은 다행히도 긍정에 가까운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리뷰글에서 비슷한 표현을 몇 번인가 반복했던 것 같은데, 두 웹툰에는 '군더더기'가 없어요. 독자들로 하여금 재미와 카타르시스를 쉽게 느낄 수 있는 내러티브를 채용하면서도, 스피디하고 군살없는 전개를 통해서 그 전형성으로 인해 쉽게 빠질 수 있는 진부함의 함정을 피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등장인물들의 격앙된 감정을 독자에게 공감시키면서도 과잉되지 않는 절제미 또한 좋았고요.


마지막으로, 야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두 작품을 훨씬 더 재밌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야구라고는 초등학교 때 플라스틱 배트와 테니스공으로 소꿉장난을 했던 게 전부인 필자도 꽤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요. 


자연주의
웹툰가이드 리뷰필진
장르를 거의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웹툰을 봅니다
백합을 특히 좋아한다는 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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