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가, 좀비와 아포칼립스 그리고 색욕
by 자연주의
2018-05-23 09: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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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리뷰는 고어 장면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심신 노약자, 임산부, 어린이 등 고어물에 약하신 분은 리뷰 감상을 삼가해주시기 바랍니다.



좀비가 등장하는 많은 아포칼립스물이 으레 그러는 것처럼 '하여가'의 세계는 좀비로 인해 인류 문명이 사실상 붕괴당했습니다. 길거리에는 무시무시한 생김새의 좀비들이 득실거리고, 사람들은 좁은 건물 속에서 간신히 연명하고 있을 따름이죠. 좀비들의 정체는 무엇인지, 이 사태를 해결할 방안이 있는지, 이런 문제들은 거의 다뤄지지 않습니다. 적어도 1부가 끝난 현재 시점에서는요. 왜냐하면, 좀비와 파괴당한 현대 문명 같은 배경은 인간들의 욕구가 폭주할 계기를 마련하는 도구적 장치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좀비물이자 아포칼립스 배경인 동시에, 이 웹툰은 본격적으로 19금에 어울리는 수위를 지니고 있고, 옴니버스의 형식을 따르고 있기도 합니다.



좀비든, 핵전쟁이든, 운석 충돌이든 이유야 어쨌든 간에 범지구적인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반응과 행동을 관찰한다는 컨셉은 그리 드물지 않습니다. '하여가'의 특장점이라면 그 포커스가 주로 성욕에 맞춰져 있다는 사실이에요. 장르가 장르이니 만큼 괜찮은 선택이라고 볼 수 있겠죠. 저도 최근에야 알았지만 의외로 이런 장르가 작가들 사이에서 구미가 당겼나 봅니다(아마 독자들 입장에서도?). 문 밖에는 살인 좀비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고, 생존한 인간들 사이에는 원초적인 폭력과 힘에 의한 위계질서가 성립되는 거죠.



각각의 에피소드 자체는 그렇게까지 신선하거나 충격적인 반전으로 무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좀비로 망해버린 세계에서 욕망이 폭주하는 인간(사회)' 라는 컨셉에 비교적 충실합니다. 작중에서 생존자들이 보여주는 컨셉은 모 인기 좀비물 미국 드라마를 연상케 하는데, 사실 이건 고전적인 클리셰라고 봐야겠지요. 오랫동안 검증된 설정이니 만큼 크게 어색하거나 이상하지도 않습니다.



이야기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작품의 컨셉과 작가의 의도에 잘 맞아떨어지는 방식으로, 그리고 깔끔하게 끝을 맺습니다. 해피 엔딩이나 선(善)의 승리와는 거리가 멀어요. 오히려 현실은 그 반대에 가깝고, 암울한 배경에 어울리지 않게 블랙 코미디스러운 결말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런 장르, 그러니까 툭 건드리면 무너져 내리는 일상을 영위하는 이야기를 좋아해서 작품을 읽는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개별 에피소드의 분량이 지나치게 길지도 않으니까, 다소 고어한 작화나 폭력·섹스 묘사에 거부감이 없는 분들이라면 한 번 살펴보셔도 좋을 겁니다.


- 2018 / 05 / 23


자연주의
웹툰가이드 리뷰필진
장르를 거의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웹툰을 봅니다
백합을 특히 좋아한다는 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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