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우아한 재해석, <그녀의 심청>
by 조청
2018-05-04 13:48:25
초기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의 심청>은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 서사 '심청전'을 현대적 감수성으로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이제껏 고전을 재해석한 많은 작품들이 그렇듯 <그녀의 심청> 역시 한 가지 의문에서 출발하죠. 심청이는 왜 장 승상 댁 부인의 제안을 거절하고 인당수 제물이 되기를 자처했을까. 그리고 그 의문은 책에 쓰이지 않은 '숨겨진 이야기'를 파고듭니다. seri와 비완 작가는 심청전의 기본적인 줄기만 남겨두고 여성 서사로서 '심청전'을 다시 그립니다. 이를 위해 우선 인물들을 새롭게 세팅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그녀의 심청>의 심청이는 원작의 심청이와 사뭇 다릅니다. 선하고 효성 깊고 몸가짐이 바르고 고운 얼굴을 가진 심청이 대신 언제 빗었는지 알 수 없게 엉킨 머리, 지저분한 얼굴, 구걸을 다니느라 굽은 어깨와 등, 허름한 행색과 상처투성이 맨발, '목소리를 듣고서야 간신히 여자아이임을 알 수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죠. 생각해보면 눈 먼 아버지를 대신해 생계를 꾸려야 하는 가난한 10대 소녀가 행색이 바르고 예쁜 모습을 유지한다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게다가 거렁뱅이인 심청이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지 오래고 호의적이지 않은 마을 사람들을 보면 <그녀의 심청>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욱 명확해집니다. 




<그녀의 심청>이 눈에 띄는 점은 심청뿐 아니라 승상 댁 부인, 뺑덕 어미, 그리고 심청의 어머니에게도 이야기를 부여했다는 데 있습니다. 특히 승상 댁 부인은 심청이와 함께 <그녀의 심청>을 이끌어 가는 또 다른 주요 인물입니다. 심청이가 승상 댁 신부를 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눈 먼 아버지를 모시는 가난한 소녀 심청과 몰락한 명문가의 여식이라는 캐릭터의 대조가 부각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들의 관계는 두 여성의 연대와 사랑의 관계로 나아갑니다. 처음에는 장 승상 부인이 자신의 무기를 이용해서 심청이를 자신이 속한 세계로 끌어들입니다. 심청이는 장 승상 댁에서 부인이 공고한 위치를 다지는 데 결정적인 조력자 역할을 하죠. 그것을 계기로 심청이와 부인의 거리가 가까워집니다.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이 웹툰이 여성 서사로서 제시하는 것들이 보다 명확해집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승상 부인을 통해 보여줬지만요. 예컨대 승상 부인이 집안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 역시 오랜 시간 동안 강요받아온 틀 안에서 자신이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결과였고, 심청이에게 베푸는 호의가 심청이가 자신처럼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라든가. 그러나 심청이는 머지 않아 부인의 방법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처음에는 바뀐 심청이의 모습에 호의적이었던 사람들이 한 사건을 계기로 바뀌게 되죠. 거렁뱅이에서 명문가의 아가씨처럼 예뻐진 심청이는 위협에 노출됩니다. 목욕을 할 때, 잘 때, 그리고 걸어다니면서, 일상 생활은 폭력에 노출되는데 마을 사람들은 오히려 무뢰배에게 저항한 심청이를 지탄합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심청이가 크게 웃으면 아픈 아버지를 두고 크게 웃는다고 나무라고, 풀 죽어 있으면 음침하다고 나무랍니다. 그런 심청이에게 부인은 "뒤엎고 싸우는 대신 다른 방법을 쓰라"고 하면서 "안쓰럽고 가련하게, 도와줄 마음이 들 만한 모습을 보여줄 것"을 말 하고, 몸을 가릴 옷감을 더 주려고 합니다. seri와 비완 작가는 부인과 심청이에게 일어난 일,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방식을 통해 오랜 시간 여성에게 덧씌워진 이미지가 어떻게 작동되어 왔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름 없는 여자들' 뺑덕 어미와 승상댁 전 부인, 심청 어머니 역시 여성들이 어떻게 '이름 지어졌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근 회차에서는 본격적으로 심청전의 메인 스토리가 전개될 조짐이 보이면서 심청과 부인의 관계도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까지 부인이 심청이를 자신의 세계에 끌어들이는 쪽이었다면, 이제는 심청이에 의해 변화하는 부인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심청이를 따라 부인은 그 전까지 명문가 여식으로서 해선 안 될 것들로 교육 받아온 것들을 합니다. 맨발로 들판을 가로지르고 기와 지붕에 오르고 욕을 배웁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단순히 해 본 적 없는 것들을 해 보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청의 말처럼 "뭐가 좋고 싫은지 좀 더 잘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며, 그것은 곧 세계의 확장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초반 회차부터 차근차근 쌓은 캐릭터 묘사와 섬세한 감정 연출은 급 진전된 심청과 부인의 관계를 돋보이게 했고요. 

이제 심청이 덕분에 심청의 그녀는 창고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고,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겠죠. 굳이 구원이라는 거창한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그녀는 심청에게, 심청은 그녀에게 각자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을 해주면서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이것이 심청이와 부인의 로맨스를 좀 더 특별하게 만드는 부분이자, <그녀의 심청>을 백합물이자 여성 서사로서 완성시키는 지점입니다. 앞으로 닥칠 사건 앞에서 이들의 삶이 또 어떻게 변화할지, 이들은 어떻게 대처해나갈지 궁금해집니다. 




조청
아직 서명이 없습니다.
댓글 1
  • 그녀의 심청 짱 (ip:115.140.*)
    (2018-05-08 01:31:39 )
    진짜 처음 1화를 보는데 뒷통수 맞는 것처럼 땡~했어요. 그런 해석은 처음 봤거든요ㅎㅎ 너무 재밌구..! 내용 전개도 참 좋은 것 같아요.
    칼럼내용도 좋습니다!!ㅎㅎ 작가님들 파이팅~

* 비회원 덧글은 삭제할 수 없습니다.

닉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