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외로움에 관하여, <균류 진화기>
by 조청
2018-04-20 09:05:22
초기화


<균류 진화기>는 자신의 노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어떤 외로움에 대해 그린 작품입니다. 애초에 외로움이 노력 여하에 달린 것인지 생각해 본다면 아이러니긴 하지만요.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태생적인 부분 때문에 무리 사이에 섞일 수 없는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작풍과 기묘한 느낌이 매력적인 젤리빈 작가의 단편입니다. 5화라는 짧은 분량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설명은 간략하게 넘어가고 세계관도 대사 몇 개로 암시하는 수준에서 머무릅니다. 인간들 틈에서 살아가도록 만들어진 이생물 따라곰팡이, 그리고 따라곰팡이를 처리하는 이생물방제서비스라는 팀이 있다는 것(이 일은 마법사가 합니다), 마녀. 이 정도가 작품 내 세계를 설명해주는 단서입니다. 이야기는 이생물방제서비스 쓱싹쓱싹의 오대리가 놓친 포자 하나에서 시작됩니다.

<묘진전>에서 볼 수 있었던 특유의 서정적인 분위기는 <균류 진화기>에서도 어김없이 빛을 발합니다. 따라곰팡이가 군락을 형성한 폐공장 기숙사에서 빠져나간 포자가 한 여자고등학교에 닿아 어느 반 마루 틈에 뿌리를 내리기까지의 모습을 몇 컷에 걸쳐 묘사하는데, 특유의 작풍에 더해 기묘하고 살짝 기괴한 분위기를 환기시킵니다. '따라곰팡이'가 무엇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시각적 정보는 따라곰팡이를 '위험한 것'으로 '치부'하게 합니다. 이런 식의 트릭은 이야기를 두껍게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등장하는 캐릭터는 많지 않습니다. 포자가 숨어든 송송여자고등학교 2학년 7반의 담임이자 마녀인 '도심', 그리고 따라곰팡이의 표적이 된 '윤소진', 따라곰팡이를 제외하면 이 두 명이 <균류 진화기>의 이야기를 이끄는 전부입니다. 도심은 문을 열기 전부터 따라곰팡이의 존재를 알아채지만 따라곰팡이에게 큰 힘이 없기 때문에 안심하죠. 일은 늘 방심하는 사이 일어나기 마련이고, 인간의 에너지와 마음을 먹고 사는 따라곰팡이에게 윤소진은 좋은 타깃입니다. 소진이 왕따라거나 흠이 있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외톨이가 되는 이유는 꼭 그런 이유에서만은 아니죠. 인간의 마음을 섬세하게 관찰할 줄 아는 젤리빈 작가는 소진이 외톨이가 된 이유를 '그런 사람들이 있다. 파장이 맞지 않는 사람. 나쁜 사람도 아니고 딱히 싫지도 않지만 어색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기묘한 작품을 선호하는 개인적인 취향은 두 번째로 치더라도, 젤리빈 작가는 확실히 '사이'를 파고드는 시선을 가진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선 위에 그리는 세계는 매력적이고요. 




워낙 짧은 분량이니까 이 이상 설명하면 작품 감상에 방해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다른 말보다 젤리빈 작가가 그려내는 세계와 감정선, 작화를 좋아한다면 충분히 재밌게 감상할 수 있을 작품입니다. 








조청
아직 서명이 없습니다.
댓글 0

* 비회원 덧글은 삭제할 수 없습니다.

닉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