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느껴지는 것은 독기(毒氣)
by 자연주의
2018-05-16 09:5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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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리뷰]가면 - 떡필버그


주인공은 잘나지 못한 외모에 변변치 않은 경제적 배경,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음침한 청년입니다. 외모로 말할 것 같으면, 작중의 표현을 어느 정도 인용해서, '밥맛을 떨어지게 만드는 귀신 대가리 같은 얼굴'입니다. 귀신 대가리까지는 아니더라도 본인도 밥맛이 떨어지는 얼굴이라는 정도는 인정할 정도입니다. 당연히 여자와 연애하는 건 꿈도 꾸지 못하고 돈 많고 젊은 아줌마에게 외모를 핑계로 엄청난 치욕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 주인공이 우연히 특수한 가면을 얻으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이 가면이란 육체를 마음대로 변형할 수 있는 놀라운 물건이에요. 얼굴을 바꾸는 것은 물론이고 체격까지 자유자재로 변화시킬 수 있으며 심지어는 인간의 범주에서 다소 벗어난 - 거시기에 돌기가 돋아 있다든지 - 조작까지 가능케 합니다. 제한 시간이 있긴 하지만 굉장한 능력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웹툰 리뷰]가면 - 떡필버그


주인공은 이 능력을 바탕으로 그저 쳐다보기만 했던 주변의 여러 여자들에게 접근합니다. 앞서 잠깐 언급했던, 시의원 따위의 고위직 남편을 둔 돈많은 아줌마.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미모의 유부녀, 일하고 있던 치킨집의 딸이자 아이돌 연습생, 안면을 트고 있던 동네 파출소의 여경 등등입니다.


여기까지만 읽어보면, 그저 클리셰 덩어리를 뭉쳐놓았을 뿐인 내용이죠. 큰 틀에서 이야기의 줄기 자체는 전형적이다 못해 고전적인 형태를 띄고 있지만, 언제나 중요한 건 디테일에 있습니다. '가면'은 호불호와 작품의 질적 수준을 떠나서, 클리셰 라는 딱지를 붙일 만한 웹툰은 절대 아니거든요.


[웹툰 리뷰]가면 - 떡필버그


주인공은 분명 능력을 이용해 여러 여자들과 섹스를 하거나 그에 준하는 관계를 맺지만, 초점은 꽃미남으로 변해서 상대를 속이고 일방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그가 아니라 '여자'들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정확히는 작중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들을 다루는 방식이 굉장히 특이해요. 고전적인 성인 웹툰에서 여자 캐릭터들의 배경이나 설정 따위는 절륜한 정력을 지녔거나 이능력자인 남자 주인공과 관계를 맺는 순간부터 거의 의미를 잃습니다. 과거의 아픔을 앓고 있는 여경이든 현재 진행형으로 학대당하고 있는 유부녀든 더 이상 별다른 의미가 없죠. 주인공에게 어떤 이유에서든 종속될 따름이니까요. 문제가 해결될 수는 있어도 더 이상 그 문제가 이야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는 없습니다.


가면은 정반대입니다. 주인공은 여자들과 섹스를 하지만 꾸며낸 외향에서 비롯된 섹스 따위는 그녀들에게 아무런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죠. 오히려 범죄의 영역에 도달한 그짓은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혀서, 한 소녀를 나락에 빠뜨릴 따름입니다.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일도 없고 그와 섹스 이상의 깊은 관계로 발전하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묘사하는 웹툰의 질감은 대단히 거칠고, 불쾌합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생고기를 날것 그대로를 독자의 면전에 들이밀어 버리죠 아마도 소개문과 인트로(주인공이 가면을 얻은 전후) 정도를 읽어본 다수의 독자들이 원하지 않았을 그런 불쾌함입니다.


[웹툰 리뷰]가면 - 떡필버그


제목처럼 '가면' 아래에 숨겨진 면모가 드러난 순간부터, 만화를 지배하는 정서는 한 마디로 '독기'입니다. 외모지상주의에 근접한 사회에서 트라우마를 쌓아온 주인공은 악의를 온몸에 두르고 있고, 그가 하는 행동들도 온갖 사회적·도덕적 금기를 가뿐히 넘어서고 있죠. 자신의 쾌락보다는 외모에 혹하는 여자들을 조롱하는 정신질환적인 섹스야말로 이 만화의 단골 손님입니다. 사실 피해자라고 볼 수 있는 일부 여자들도 원래의 주인공 못지않게 정신 상태가 맛이 가버렸거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이상하게 망가집니다. 정상인 인물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는 지경이죠.


작가는 분명 명확한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성인 웹툰으로서의 대중성과 타협한 결과라고 할지, 전개가 다소 혼란스러운 부분이 눈에 밟힙니다. 이를 테면 50회가 넘어가는 시점에도 주인공의 패악질과 (그를 응징할 것으로 보이는)여경 사이에는 별다른 접점이 없어요. 둘이 서로를 알고 있고 필연적으로 충돌하리라는 것쯤은 독자들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만, 두 이야기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주제가 다소 모호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그와 동시에, 클리셰적인 성인 웹툰이라는 가면을 뒤집어 쓴 이 독기 넘치는 이야기의 결말이 무척이나 궁금해지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 2018 / 05 / 16


자연주의
웹툰가이드 리뷰필진
장르를 거의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웹툰을 봅니다
백합을 특히 좋아한다는 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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