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집, 사정>, 유혈낭자
by 자연주의
2018-04-10 09:44:00



누나의 치킨집에서 배달 알바를 하는 '연우'는 '시연'의 집에 치킨을 배달하러 갔다가 그녀와 섹스를 하게 됩니다. 대단한 몸매를 자랑하는 미인인 시연이 먼저 유혹하자 속절없이 넘어갔는데요. 한창 삽입 행위를 하던 도중 우연히 벽에 걸려있는 시연과 그녀의 남편 '하진'의 결혼 사진을 보고 시연이 유뷰녀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사실 시연은 남편인 하진을 거의 병적으로 사랑하고 있지만, 정작 남편은 그녀를 무슨 벌레보듯 대하고 있고, 술에 취한 시연은 충동적으로 젊고 귀엽게 생긴 연우와 볼륜을 저질러 버린 거죠.




몇 번인가 위기도 있었지만 다행히 들키지는 않았고, 시연도 계속 연우를 찾습니다. 바로 아래층(시연의 집입니다)에 하진이 있는 와중에 계단참에서 시연과 연우가 죽을 듯이 섹스를 한다던가, 이런 장면만 놓고 보면 스테레오 타입의 19금 웹툰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을 테지만, 꼭 그렇지는 않아요. 클리셰로 점철된 작품은 맞는데, 성격이 많이 다른 장르를 과격하게 섞어놓음으로써 진부함을 피했습니다.


무슨 얘기인가 하니 시연의 남편 하진의 직업은 킬러에요. 살인 청부업자, 그러니까 돈을 받고 다른 사람을 죽이는 범죄자입니다. 그것도 개인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규모가 큰 '회사'에 속해 있어서, 1년에 족히 수십 명의 목을 따는 그런 엄청난 사람입니다. 시연과의 결혼도 단지 신분을 숨기기 위한 속임수에 불과했고, 만약 아내에게 정체가 들통 나면 언제든지 그녀를 살해할 의지와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심지어 시연을 부르는 명칭은 '비품'이에요. 말 그대로 도구에 불과하다는 의미이지요.




이야기는 남편에게 외면당하는 욕구불만 유부녀가 심심한 젊은 청년을 꾀어낸다는 고전적인 방식으로 시작됐지만, 정작 만화의 지면을 채우는 것들은 살색이 아니라 선혈이 낭자하는 무자비한 폭력입니다. 물론 섹스하는 장면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오히려 엄청나게 많죠. 다만 본격적으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서비스씬이라기 보다는 스토리 진행을 위한 수단이라는 느낌이 더 강합니다.


19금 웹툰으로서, 그리고 시작이 전형적이었던 것처럼 킬러 이하진과 그의 무지한 아내, 그리고 이 둘을 둘러싼 '회사'의 존재까지, 스릴러 장르로서의 이야기 자체도 클리셰 덩어리에 가깝습니다.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요. 냉혹한 살인 기계로서 키워진 남자. 그러나 그에게 헌신하는 여자의 존재를 마주하며 흔들리게 되고, 다시 그를 속박하려 하는 어두운 세계. 뭐 그런 이야기들이죠.



그럼에도 제법 흡입력 있는 웹툰임은 분명합니다. 그 비결이란 앞서 짧게 언급한 것처럼 다른 두 장르의 클리셰를 과격하게 섞은 덕분입니다. 젊은 유부녀의 볼륜, 어둠의 세계에서 벗어나려는 남자, 이 두 가지 이야기는 따로 떼어놓고 보면 진부할 뿐이지만, 둘을 마구 섞어서 과감하게 독자들에게 내놓자 흥미로운 작품이 탄생했다고 할까요. 어느 한 쪽의 이야기가 슬슬 지루해질 무렵에는 또다른 - 전혀 다른 스타일의 - 이야기가 툭 튀어나오니 독자로서는 지루할 걱정을 많이 덜었죠. 내용적인 측면에서든 그림의 묘사든 워낙에 자극적인 만화이기도 하고요.


작품 초반에 다소 아쉬운 듯했던 작화는 회차가 쌓여갈수록 눈에 띄게 좋아집니다. 다만 잔인한 묘사에 내성이 없는 분들은 조금 주의할 필요가 있겠고요. 섹스 장면은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가 꽤나 신경을 쓴 티가 많이 납니다. 비유하자면, 조화가 괜찮은 즉석식품 같은 느낌의 웹툰입니다. 콜라와 햄버거처럼, 무척이나 자극적이면서 서로의 단점을 씻어주는 거죠.


- 2018 / 04 / 10




자연주의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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