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리뷰
웃고 울며 보는 LGBT 시트콤 <어서오세요 305호에>
by 오렉시스
2018-01-02 09:21:45

글/그림: 와난


시놉시스

대학생이 되어 자취하게 된 김정현은, 같이 살게 된 하우스메이트가 게이라는 사실을 자취 첫날 알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우선 딱 한 달만 같이 살기로 하는데...



 어렸을 때 <상남 2인조>를 보다가 인상깊었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외로워하던 하던 에이키치는 우연히 ‘미사’를 알게 됩니다. 아름답고 자신과 마음도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서 너무 기뻤던 에이키치는, 그러나 곧 미사가 여장을 한 생물학적 남성이라는 점을 알게 됩니다. 에이키치를 몰래 좋아하던 후배는 그를 “기껏 좋아하는 사람이 게이라니”라며 비웃지만, 에이키치는 심각하게 고민하다 미사를 따라가기로 결정을 합니다. 하지만 미사는 에이키치의 선택에 고마워하면서도 그 마음을 받지 않은 채 홀로 떠납니다. 

 이 에피소드가 제게 인상깊었던 것은, 대체 연애를 한다는 게 무엇인지를 처음으로 깊이 생각하게 해줬기 때문입니다. 즉 생물학적 성 이외의 요소가 연애에 중요할 수 있다면, 대체 그건 무엇일까? 생물학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이성애적 관계 밖을 생각해본 적이 없던 헤테로섹슈얼인 저에게, 이런 생각은 꽤나 충격적이면서도 신선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위의 에피소드에서 고칠 부분이 있습니다. 여장을 했던 미사는 게이가 아니라 트랜스젠더입니다. 이런 구분을 알게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학교에서 저에게 그 누구도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등의 개념에 대해 정확히 알려준 적이 없었고, 당연히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과 성적 정체성Gender Identity 사이 차이도 몰랐습니다. 이런 무지는 사회 전반에 걸친 것이어서,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LGBTQIA 등이 각각 무슨 뜻이며 어떻게 다른지 정확히 모를 겁니다. 사실 저도 여전히 헷갈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정규교육의 바깥에 위치하는 성적 소수자 개념은 그래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무지의 그림자에 위치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동등한 존중해야 한다는 의식 역시 일반적이지 않아서, 쉽게 사회적 차별의 대상이 됩니다. 퀴어들의 존재는 대중매체에 종종 등장할 때도 있지만 이들의 모습은 매우 단편적으로만 그려지며 그나마도 부정확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 점에서 <어서오세요 305호에>(이하 <305호>로 약칭)는 매우 교과서적이면서도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퀴어를 본격적으로 작품 전면에 내세우고 있으며, LGBT를 등장인물로 배치하여 작품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BL/백합 장르에서 그려지는 것과 조금 다른 층위에서, 이 작품은 아예 성적 소수자들의 이야기 자체를 전면에 둡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재밌습니다. 이 작품을 본 많은 분들이 한 편의 시트콤을 본 기분이라고 하던데,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이 만화의 탁월함은, 매우 무거울 수 있는 성적 소수자 이야기를 풀어내면서도 만화의 본분인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데 성공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다만, 이 재미는 작가의 의도적인 전략적 선택에 의해 대중적으로 접근가능해진 측면이 있습니다. 




제 이름은 김정현, 주인공이죠. 그런데...


 <305호>는 LGBT“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한 명의 게이나 레즈비언이 주목을 받지 않습니다(물론 하우스메이트 김호모의 비중은 매우 큽니다). 긴 호흡을 가진 몇 개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의 이야기가 하나씩 소개됩니다. 이 배치는 명백히 계몽적인 색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도는 이미 주인공의 설정에서부터 드러납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김정현은 퀴어가 아니라, 매우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학교 교육과정을 밟은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 남성입니다.


 작품의 출발점에서 그는 퀴어들에 대해 매우 부정확하고 빈약한 지식만을 가진 상태입니다. 와난 작가는 이 만화를 볼 일반적인 독자 역시 이러한 상태임을 가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주인공 김정현이 성적 소수자들과 가까워지는 만큼, 독자들도 그러하길 기대하는 듯합니다. 

 김정현은 평범한 20대 남성입니다. 그는 속이 넓거나 이해심이 많지도 않습니다. 때문에 그가 처음 접하는 퀴어들과 잘 지내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이를테면 그는 하우스메이트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바로 집을 나가려고 합니다. 그가 퀴어들과 친밀해지는 과정으로서, 작품 전반부에는 일종의 장치로서 ‘역지사지’ 에피소드가 들어 있습니다. 다소 작위적일 수 있지만, 전개의 개연성을 위해 필요한 부분입니다. (또한 이 부분에서 작가는 퀴어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들을 열거하며 이에 대해 해명하기도 합니다.) 이 사건 이후 김정현은 퀴어들을 예전만큼 극단적으로 멀리하지는 않게 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곧바로 퀴어 지인들과 친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퀴어들이 자신과 다른 생명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뿐입니다. 김정현은 홈과의 에피소드가 끝난 이후 그저 일상을 영위하며 평범한 대학생활을 즐깁니다. 어쩌면 와난 작가가 독자들에게 출발점으로서 요구하는 것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완전한 포용적 자세가 아니라, 그저 같은 인간으로서 퀴어들을 볼 것. 그 이후의 퀴어들의 이야기에 김정현은 주로 관찰자로 개입하거나, 아예 등장하지 않게 됩니다. 주로 김정현은 백장미와의 슬픈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으로만 배정됩니다. 악마같은 와난 작가는 분위기가 너무 무겁게 흘러갈 때마다 사이에 낀 에피소드로 김정현을 괴롭힙니다. 김정현의 러브스토리가 어떻게 결말이 날지 보는 것도 이 작품의 묘미입니다.



LGBT 이야기: 친밀성으로부터의 배제라는 공포와 불안


 <305호>에 등장하는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는, 주로 친밀성 관계에서의 배제에 초점을 맞춥니다. 퀴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 때문에 가장 가까운 가족, 친구, 애인으로부터 배척받거나 혹은 멀어지길 요구받습니다. 이를테면 수 년 동안 이어져 왔던 우정은 퀴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쉽게 깨져버립니다. 퀴어라는 것이 밝혀진 이후 끈끈했던 가족관계는 파탄날 위기에 놓입니다. 청소년 퀴어는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다가 잠적해 버립니다. 어느 레즈비언은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지만, 가족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끝내 그녀를 이성과 결혼시켜 버립니다. 

 친밀성 관계는 보편적인 권리나 제도적인 차별 이전의 문제입니다. 가령 친구와 절교하거나 가족과의 연을 끊는다고 해서 법을 어기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랑, 우정, 애정과 같은 친밀성 관계들은 개인의 정체성에 있어 매우 중대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친밀성 관계를 형성하는데 위협을 받는다는 것은, 그들이 곧 인간으로서 인정받는 가장 기본적인 단계가 취약해짐을 의미합니다. <305호>에서 그려진 퀴어들의 이야기가 독자들을 눈물짓게 만드는 사연인 것은, 그들이 사회적으로 벼랑 끝에 서 있게 됨을 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왜 제도적/법적 차별의 문제는 다루지 않았을까요? 와난 작가는 제도적 차원의 논의까지 여기에서 다루어지기엔 다소 무겁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제도적 차원의 문제는 관계의 인정만큼이나 사회적 존재들에게 중요한 문제이며, 공동체에서의 인정과 제도적 차별의 문제가 더욱이 완전히 별개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제도적 층위에서 논의가 이루어질 때, 우리는 더 많은 검토사항을 필요로 합니다. 가령 동성혼 문제가 다루어질 경우, 혼인과 가족의 의미, 그리고 동성혼 인정을 위한 기존의 노력들 등을 완전히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습니다. <305호>는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로서 일종의 ‘개론’ 작품이기에, ‘전공’ 단계의 논의까지는 나아가고 싶지는 않았던 거라고 저는 추측합니다.

 물론 친밀성 관계에서의 이야기만을 다루었다고 해서 <305호>의 무게가 가볍지는 않습니다. 퀴어들이 사회적 관계에서 배척되고 소외되는 가운데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와난 작가는 매우 잘 포착하고 또 표현해냅니다. ‘일반’들의 시선에서 주목될 수 없었던 이 이야기들을 표면화함으로써, <305호>는 그저 유머스러운 시트콤 이상의 작품성을 확보합니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성소수자들은 성 정체성이 다를 뿐이라는 점을 역설하며, 김정현과 그 주변 인물들 사이의 관계처럼 벽을 조금씩 허물어가는 이상을 그립니다.




다르지만 같은, 혹은 같지만 다른


 앞서 <305호>의 작가는 일종의 전략적인 선택을 했다고 언급했는데요. 우선 작가는 이 작품에서 성소수자들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호모포비아들에 대해 다소 모호한 위치를 취합니다. 가령 홈의 친구 구민아는 호모포비아들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며 분노를 표출합니다. 게이가 사람을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모르겠다고요. 하지만 민아는 반대로 호모포비아들도 우리들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며 한 발 물러섭니다. 여기에서 와난 작가는 호모포비아들에 대해 논박하려는 자세를 취하기보다는, 퀴어들의 이야기에 조금 더 집중하려는 자세만을 보여줍니다. 즉 누가 옳고 그른지는 말하지 않은 채,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기고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조금 더 논쟁적인 선택은 <305호>에서 퀴어들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작품 전반부에서 홈과 김정현은 마찰을 빚습니다. 김정현은 홈이 자신의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몹시 불편해하며 이야기를 돌려 버립니다. 김정현은 그렇게 해서 홈과 친분을 쌓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홈은 이 대화를 매우 불편해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막아버리고 이성애자인 정현이 편한 이야기만 한다는 거죠. 그런데 바로 이 문제는 와난 작가가 작품 전체에서 고민하고 있었던 문제이기도 합니다. <305호>에서는 퀴어들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묘사 내지는 표현이 거의 없습니다. 퀴어들은 성적 지향/정체성이 다를 뿐, 그 밖에는 ‘일반’들과 모두 동일한 구성원으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이 다른 부분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해 작가는 별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서울대학교 성소수자 모임 QIS와의 인터뷰에서, 작가는 독자들이 “최대한 불편함 없이”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합니다.


[기획기사 1-1 : 그와 웹툰의 事情 바로가기]


 작품에 등장하는 퀴어들의 가슴아픈 사연들 역시, 퀴어 정체성으로 인해 누리지 못하는 친밀성 관계에서의 배척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 초점은 엄밀히 말하면 성소수자들의 정체성보다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누려야 할 관계 자체에 맞춰집니다. 즉 이 이야기들은 포함/배제의 범주도식 속에서 전개되며, 포함의 당위성에 공감을 얻기 위해 퀴어들의 차이는 탈색되어 있습니다.

 이런 의도로 인해, 독자들은 <305호>에 등장하는 성소수자들이 ‘일반’들과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일반’과 정확히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이성애 관계에서의 연애 양상과, 동성애 관계에서의 연애 양상은 어떻게 다를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오히려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 <모두에게 완자가>를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물론 작가의 선택이 불가피했다고 볼 여지도 있습니다. 이 작품은 메이저 웹툰 플랫폼에서 ‘성소수자’라는 이슈를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입니다. 작가는 이 작품이 많은 이들에게 ‘거부감 없이’ 기본적인 공감을 얻는 것이 목표였다고 QIS와의 인터뷰에서 밝힙니다. 따라서 작가는 ‘같지만 다른’ 측면을 보여주는 것보다, ‘다르지만 같은’ 측면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그만큼 커다란 호응을 받습니다. 그렇기에 <305호>처럼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작품은, 이제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합니다. 이미 일종의 ‘개론’으로서 이 작품이 해낸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들은, 이제 적어도 <305호> 너머의 수준이어야 하겠지요. 




소결


개인적으로 후반부의 이시한 에피소드는 다소 아쉬웠습니다. 바이섹슈얼의 이야기를 다룬 이 부분은, 작품 내의 다른 에피소드와 비교하면 다소 비중이 낮고 울림도 적은 편입니다. 꼭 성소수자의 모든 이야기가 감동적이고 울림이 있어야 하진 않지만, 좀 밋밋하다고 해야 할까요. "내 폴더 안의 비둘기!!!!"를 외쳐대는 이시한이라는 캐릭터 자체도 다소 매력적인데, 작품 후반부에 잠깐 등장한 이후 끝나버려서 비중이 너무 낮았습니다.




 반대로 제가 가장 좋아했던 에피소드는 오윤아/오윤성 남매 이야기, 그리고 백설의 에피소드입니다. 오윤아-오윤성 남매가 빗속에서 다투는 장면은, 제가 웹툰을 보기 시작한 이래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였습니다. 물론 이 남매는 작품 전반에 걸쳐 개그 캐릭터로서의 역할과 진지한 역할을 번갈아 수행하며 스리슬쩍 진짜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작가님 스스로 오윤아를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라고 밝힌 적이 있는데, 그 애정 탓일까요. 반면 주인공 김정현은 백장미와의 슬픈 추억만을 남깁니다.


 위에 이런저런 평들을 적었지만, 어쨌든 네이버 웹툰에서, 아니 제가 본 웹툰 중에서 가장 훌륭했던 작품 중 하나로 망설임없이 꼽는 작품입니다. 완결된 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 작가님이 후속작 <하나>를 연재하느라 <305호> 단행본이 아직 나오질 않고 있습니다. 2권까지 산 저는 후속작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 뿐이고요. 


 끝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대사를 옮겨봅니다. 작가는 ‘일반’들이 ‘이반’들과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지만, ‘이반’들의 불안에 대해 ‘일반’들이 해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지지를 한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누군가로부터 커밍아웃을 받았을 때, '일반'인 당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곁에 있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어떤 결정을 하든 간에요.”





                                     
오렉시스
http://orexis-beramod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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