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리뷰
어느 섹스중독자의 고백, 『말하기엔 사소한』
by 관리자
2017-10-12 11:42:07


『말하기엔 사소한』  |   라코   |  올레마켓 웹툰  |  매주 월요일 연재


 


 


섹스중독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중학생 때 본 카트린 브레야의 영화 <로망스>를 통해서였다. 계단에서 강간에 가까운 정사를 벌이다가 화대도 치루지 않고 도망가는 남자를 향해 소리치는 카롤린 뒤세의 일그러진 표정이 기억난다. 연인이 있지만 거리의 남자들에게 몸을 맡기는 그녀의 심리는 당시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기행이었다. 섹스중독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 건 한참 후의 일이다. 한 영화제에서 봤던 포르노 옴니버스를 통해서였다. 스크린에는 사정이 불가능한 남자가 뜨거운 사막을 걸어가며 계속해서 자위를 하고 있었다. 카메라는 그를 오래 응시했지만 끝내 사정하지 못했다. 만족할 수 없기에 더욱 탐닉하게 되는, 고통과 공허함으로 가득한 그의 얼굴은 그해 마주한 표정 중 가장 공포스러웠다.


 


모르는 이와의 섹스에서 우희는 갈증을 느낀다.

 


올레마켓 웹툰에서 연재중인 라코의 『말하기엔 사소한』에도 그에 못지않을 표정을 한 여자가 등장한다. 서점에서 일하는 말수 없는 그녀, 우희다. 겉으로 보기엔 단정해 보이는 그녀는 사실 섹스중독자다. 어디서건 매일 자위를 하지 않을 수가 없으며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모르는 남자들과 과격한 섹스에 빠져든다. 누구든 체온은 같으니까 자신이 필요할 때 함께 섹스에 동참해 줄 남자만 있으면 상관없다. 때로 자신의 약점을 동료에게 들켜 위험에 빠지는가 하면 함께 하룻밤을 보낸 남자가 직장에서 아는 척을 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행동을 멈출 생각은 없다.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까 싶은데 그녀도 웃고 일하고 떠든다. 다만 어딘가 생기 없어 보이는 빈 표정이 거슬릴 뿐이다.


 



그녀가 느끼는 성욕은 자기파괴적 욕망과 닮았다. 쾌락을 통해 고통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섹스나 자위에 빠져들 때마다 우희가 강박적으로 떠올리는 것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옛 연인이다. 관계를 나누며 끝도 없이 속삭였던 밀어와 자신을 간절히 원하는 그의 표정을 떠올리지 않으면 우희는 절정으로 향할 수 없다. 섹스가 아니라 가장 고통스러울 때 느끼는 쾌감에 중독된 것이다. 그래서 자주 등장하는 섹스신은 적나라해질수록 괴롭다. 정형화 된 인체만 등장해 인물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는 것이 조금 아쉽지만, 작품 자체가 전달하려는 건조하지만 과격한 분위기를 나타내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창고에서 자위를 하다가 동료직원에게 들켜 우희는 협박을 받기 시작한다.

 


우희를 들여다보면 그녀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쾌락이 아닌 타인으로부터의 구원이다. 스스로는 할 수 없다고 좌절하고 있으므로 타인의 체온이 어떻게든 지옥 같은 기억을 지워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타인에 의한 구원은 환상이다. 그녀가 그렇게나 좇는 쾌감처럼 어느 순간이 지나가면 또 다시 사라지거나 없어질 것이 분명하다. 결국 무엇에 중독된다는 것은 명확히 원하는 바가 있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한 채 1차원적인 쾌락으로만 보상받으려고 하는 행동이 아닐까. 물론 본인은 지금도 리스크를 감수하고 꽤나 큰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테지만.


섹스중독자를 다루는 작품은 인간의 외로움과 허무함에 대해 집요하게 응시하고 그걸 과격한 액션인 섹스로 드러낸다. 라코의『말하기엔 사소한』도 같은 맥락이다. 공허, 절망, 상처를 해소하기 위해 섹스로 도피하지만 그럴수록 더 깊은 나락으로 스며들어가는 삶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본다. 익숙한 시선이지만, 그렇다고 지루하거나 상투적이지 않다. 누구나 심연에는 채워지지 않는 블랙홀이 있지 않느냐고 되묻기 때문이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 빈 구멍을 모두 메우기 위해 늪으로 걸어가는 것. 그녀가 만약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하여도 여전히 불안한 이유다.








출처 : 에이코믹스 https://acomics.webtoonguide.com/archives/29970
윤태호 작가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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