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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리뷰] <발자국이 녹기 전에> : 우리의 흔적은 아프다, 그러므로

뚜뚜  |  2017-03-27 09:49:10
 | 2017-03-27 09: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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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이 녹기 전에>
  : 우리의 흔적은 아프다, 그러므로
[웹툰 리뷰]발자국이 녹기 전에 - 서결



 발자국은 흔적의 표상이다. 발자국이 남은 자리는 누군가 밟고 지나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삶에는 수많은 발자국들이 찍힌다. 그 발자국들은 타인이 내 안에 남기고 간 것들이다. 어떤 발자국은 얕아서 바람이 불면 금세 없어질 수도, 어떤 발자국은 깊어서 없어지지 못하고 오래 기억될 수도 있다. 어떤 발자국은 좋은 곳에 찍혀 늘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고, 어떤 발자국은 더듬어 존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서글퍼질 수가 있다. 그래서 이 슬픈 발자국을 과거의 상처라고 칭한다.

  트라우마나 과거의 상처는 현재를 망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극복'을 이야기한다. 극복은 뒤의 발자국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힘이다. <발자국이 녹기 전에>는, 자신의 과거의 발자국으로 끊임없이 회귀하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홍조는 서련방의 기생으로, 지독한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기생이 되었다. 기생을 떠올리면 보통은 '다방면으로 뛰어난 엔터테인먼트'라는 허황된 문장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그럼에도 그들의 명칭은 '꽃'이었다. 꽃이 단순히 아름답다는 의미로 쓰이지 않음을 우리는 안다. 그것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수동성의 대명사이며, 따라서 수동적인 여성을 표현한다. 남성이 손을 뻗으면 언제든 취할 수 있는 이런 수동성은, 기생이 단순히 현재의 아이돌이나 스타와 같은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드러낸다. 결국 기생들은 남성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그들의 기분을, 욕구를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수단이었다.

[웹툰 리뷰]발자국이 녹기 전에 - 서결

  그와 비슷하게 한은, 판서 집안의 자식으로서 공부를 못하는 형을 대신하여 가문의 기대를 지고 살았다. 때문에 한은 능동적인 한 사람으로서 존재하지 않고 집안의 명예를 일으켜야 하는, 꼭두각시와도 같은 삶을 살았다. 부모는 간혹 자식을 자신의 꿈을 대신 이루는 인형으로서 취급하고 실제로 그렇게 키우기도 한다. 자식은 그 사상의 희생양이 된다. 이런 희생은, 현대보다는 <발자국이 녹기 전에>가 배경이 되는 조선 시대에 유달리 심했다. 한의 삶은 수동적이도록 설계 당했고 '모종의 사건' 이후 본인의 삶을 되찾으려는 노력은 때문에 휘청거린다. 단 한 번도 능동적인 삶을 그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웹툰 리뷰]발자국이 녹기 전에 - 서결

  수동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는 둘의 만남은 특별한 자국을 남긴다. 기생과 글밖에 모르는 서생의 처지, 서민과 양반의 처지인 둘은, 능동적으로 굴어야만 이어질 관계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강렬한 욕망을 남기고 그들은 욕망에 따라 행동을 바꾼다. 홍조는 한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서련방을 탈주하고, 한은 자신의 처지를 뒤로 한 채 그녀를 돕거나 그녀를 위한 행동들을 한다. 이는 아주 유의미한 변화를 준다.

  능동적으로 행동한다는 건 결국 과거의 발자국에서 벗어나기 위한 약동을 필요로 한다. 앞에 욕망의 대상이 있으면 약동을 해야 한다. 한과 홍조는 발걸음을 옮긴다. 욕망의 실체를 마주했을 때 그들은 살아있음을 느낀다. 기쁘고, 행복하고, 웃을 수 있고, 이 모든 것이 그렇다. 연인은 현재에 머물고 있으므로 필히 현재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기쁘고 행복하고 웃기 위해서는 과거에 머물러서는 안되기 때문에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상처의 극복을 위한 수단으로 사랑을 제시한다.

  그러나 <발자국이 녹기 전에>의 사랑은 단순한 극복이 되지 못한다. 홍조가 애초에 한에게 호감을 갖게 된 이유가 '과거의 상처'와 닿아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죽었던 홍조의 첫사랑과 한은 지나치게 닮았다. 홍조의 첫사랑이 죽은 것은 홍조에게 커다란 상처였으므로, 그녀의 시선에는 첫사랑에 대한 대체제로서 한이 존재한다. 상처를 대체하여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오는 것, 그럴 듯한 해결 방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아니며 한쪽 발을 과거의 발자국에 남겨둔 것이기 때문에, 그녀는 약동하는 것처럼 보이나 기실 머물러 있다.

[웹툰 리뷰]발자국이 녹기 전에 - 서결


 머물러 있는 사람은 현재로 올 수 없다. 그리고 이 시간의 차이가, 둘의 사랑에서 큰 장애물로 작용될 수 있다. 그녀는 수동적이다. 시대상으로도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위치이다. 기생과 양반의 수동성은 결코 같을 수 없다. 그녀가 아무리 능동적이게 되어 봤자 옥난이 이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능동적일 수 없다는 게 그녀를 과거에 묶어두고, 그녀와 그의 사랑을 방해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한이 어떻게 능동성을 되찾는지와, 홍조가 어째서 얽매일 수밖에 없는지이다. 우리는 해피 엔딩의 가능성이 극히 적은 이야기가 기쁘게 끝날 때에 쾌감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불가능한 사랑은 인기를 얻는다. 머물러 있는 사람과 나아가려는 사람은 결국 함께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사랑 이야기가 아닌 것은 아니다. 조금 아픈 흔적이 될 뿐이다.


  [웹툰 리뷰]발자국이 녹기 전에 - 서결


뚜뚜
귀엽고 깜찍한 대학 졸업반.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웹툰만 본다. 글은 별로 안 귀여워 보이지만 실제로 만나면 귀엽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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