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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답을 찾을 수 있을 까 <팬피터>

심지하  |  2020-01-04 09:35:52
 | 2020-01-04 09:3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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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답을 찾을 수 있을 까 <팬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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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도가 낮았던 올레마켓-케이툰을 알렸던 작품들. 지금은 케이툰에서 볼 수 없는 작품이지만 메이저 플랫폼이 아닌 곳에서도 남다른 포스를 선보였던 멋진 작품들이 있다. 예를 들면 팬피터. 2013년 10월 프롤로그로 문을 연 장마로 작가의 <팬피터>는 16년 1월 완결을 선보였다. 그러나 현재(2019년 기준) 버프툰에서 월요 웹툰으로 재연재 중이다. 내용은 별반 다르지 않으나 일부 작화가 수정된다고들 하니 기억 속 팬피터를 추억하며 읽는 것도 하나의 재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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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피터는 제목에서 짐작하듯 제임스 매슈 배리의 <피터팬>을 기반으로 둔 작품이다. 원작은 매우 유명한 작품이지만 원작을 모른다고 해도 <팬피터>를 읽는 데 지장은 없다. 작품 속에서 전지전능한 힘을 보이는 팬피터. 그는 네버랜드에서 사는 네버랜드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로, 작중 누구보다 순수하며 규칙을 따르는 존재이다. 다만 순수하다는 것은 순진하거나 선하다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자신이 정한 규칙에 따라 악인을 징벌한다는 뜻이다. 선악의 구분과 윤리 도덕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이 그저 재미있다는 이유로 잠자리의 날개를 뜯어내는 것처럼, 팬피터는 어른과 아이로, 선인과 악인으로 사람을 나눠 '선한 아이'를 돕고 '악한 아이'를 징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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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암호를 정해주며 함께 길을 떠나는 루시와 팬피터. 동화처럼 아름답고 꿈결같은 프롤로그로 시작한 팬피터는 무척이나 잔혹하다. 단순히 학교 폭력과 왕따 문제를 다루는 것을 떠나 폭력의 굴레에 대해 다루는 작품이니 만큼, 폭력 그 자체에 대한 묘사도 상당하므로 독서 시 주의를 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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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에피소드에서 팬피터는 끔찍한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차마 가장 가까운 이해자이며 보호자인 부모에게조차 이를 고백할 수 없던 피해자 아이를 보여준다. 팬피터의 '복수와 단죄'에도 그저 더 이상 아프지 않다는 사실이 좋다고 말하는 피해자. 그리고 죄의 대가로 불구가 되어 '피해자가 되어버린 가해자'는 팬피터에게 복수를 요구한다. 작중 묘사되는 폭력들은 직접적이지 않으나 충분히 그 끔찍함을 짐작할 수 있는데, 여기서 작가의 빼어난 연출력이 돋보인다. 여기엔 반성이나 회개는 존재하지 않고, 오직 고통만이 존재한다. 피해당한 아이의 고통, 징벌받은 가해자의 고통, 피해자 아이를 잃은 부모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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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폭력으로만 단죄할 수 있는 것일까?

첫 번째 에피소드 이후 다양한 아이들이 나타난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세계는 아이만 사는 세계가 아니고 어른만 사는 세계도 아니므로. 결국 모든 어른은 한 때 아이였고 모든 아이는 어른이 될 수 밖에 없으므로. 사람은 단호하게 어느 두 부류만으로 나뉠 수 없으므로, 다양한 폭력에 노출되고 폭력을 행사하는 아이들과 함께 어른 또한 이야기된다. 아이를 방치하는 부모, 아이를 사랑으로 아껴주는 부모, 아이를 두려워하는 부모,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 아이를 돕고자 하는 어른, 그저 책임지고 싶지 않아 하는 어른,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해주고자 노력하는 어른, 그저 자신을 위해 아이들을 도우려는 어른…… 팬피터는 분명 학교 폭력에 관한 이야기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에 관한 이야기기도 하다. 폭력은 폭력으로 단죄할 수 있는가? 폭력의 굴레를 끊어내는 것은 가능할까? 단죄를 위한 폭력은 폭력이 아닌 걸까? '되갚아 주는'것만이 폭력의 굴레를 끊어내는 것일까? 피해자와 가해자를 그저 격리하는 것만이 최우선일까? 가해자,폭력의 씨앗을 지닌 아이들을 그저 사회에서 배제하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그렇다면 배제의 기준은 무엇일까, 주먹질하고 물리적 폭력을 행한 것만이 폭력인가? 언어는? 시선은? 방관하는 것은 폭력이 아닌가? 이 무수한 질문을 팬피터는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인외의 존재,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가 되고 싶은 팬피터를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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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작품 속에서 팬피터는 오롯이 긍정되는 존재는 아니다. 팬피터는 아이는 물론 어른의 속내까지 누구보다 날카롭게 꿰뚫지만, 마음을 읽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피터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지언정 그 고통은 이해하지 못한다. 타인의 마음을 듣기 위해 귀 기울이는 것이 아닌, 그저 소리가 들렸기에 들은 것뿐이기 때문에. '왜 네가 내 복수심을 결정해?'라고 묻는 아이가 있고, '악당을 죽이는 것 역시 살인'이라고 말하는 아이가 있다. 피터와 암호를 정했던 루시 역시 팬피터의 모순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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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읽는 내내 치솟는 질문들. 해당 작품은 이미 이전 플랫폼에서 완결이 난 상태이기 때문에, 작품의 리뷰를 찾아보면 1부와 달리 2부에서는 실망하였다는 평이 제법 많았다. 연출의 문제도 있고, 작가의 건강을 걱정하는 리뷰도 있었다. 컷이 너무 자주 바뀐다거나 완급 조절에 실패했다거나 인물의 쓰임새가 조악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모두 공감하는 편이다. 다만 어떠한 해답을 바라는 리뷰에 대해서는 애매한 입장이다. 팬피터를 읽는 내내 독자의 가슴을 두드렸던 다양한 질문들은 팬피터도, 팬피터가 구출한 아이들도 낼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든 독자가 입을 모아 같은 이야기를 하는 작품은 어떤 면에선 메세지가 뚜렷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으나, 팬피터처럼 윤리와 관련된 작품은 조금 다르다. 사람을 단호하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없듯, 팬피터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들은 단 하나의 답으로 해결될 수 없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한 질문을 던진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다시금 생각할 기회를 준 것만으로도 이미 팬피터는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쉬운 점이 전혀 없느냐고 묻느냐면 꼭 그렇지만은 않지만. 이런 웹툰을 읽을 수 있어서 기뻤다는 평은 남기고 싶다. 재연재 중인 팬피터는 현재 버프툰에서 2부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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