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뿌리의 웹툰 칼럼
한국 웹툰 사건 사고에서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문제들.
by 잠뿌리
2017-12-26 14:39:50


 한국 웹툰 플랫폼의 블랙 리스크 공유가 이슈화된 이후, 레진 코믹스발 블랙리스트가 밝혀져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레진 코믹스 소속의 일부 작가들이 항의의 뜻으로 무기한 휴재에 들어갔다.

 일단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이번 이슈로 비화되기 며칠 전에 관련 칼럼을 하나 써서 올렸고, 블랙리스트가 결코 존재해서는 안 될 부당한 것이란 내용의 글을 썼으니 그 부분은 일단 넘어가고. 여기서는 사건의 본질(블랙리스트)를 호도하는 문제들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 번째 지적할 문제는 남자 작가, 여자 작가로 남녀 성별을 나누어 성별 프레임을 만들고 거기에 스스로 갇힌다는 점이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여자 작가들은 피해를 입고 항의를 하고 있는데, 남자 작가들은 피해를 입지 않고 항의도 하지 않으면서 침묵을 지킨다고 몰아가는 점이다.

 물론, 이번 이슈에서 여자 작가들이 항의의 주축을 이루고 있긴 하고 실제 남자 작가들의 참여도가 저조한 건 사실이다.

 허나, 과거 웹툰 대나무 숲 사건 때 직접 당사자가 되어 플랫폼과 싸우고,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은 사람 중에서는 남자 작가도 많았다. 그런데 그때는 지금처럼 성별 프레임을 스스로 만들고 갇혀 있지는 않았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플랫폼이 작가를 착취한 것 그 자체다. 작가 자체의 문제지. 남녀의 문제가 아니다. 남녀의 문제로 걸고 들어간 시점에서 작가들의 문제라는 본질에서 벗어나 단순히 성별 싸움 문제로 비화되어 정작 중요한 작가 문제가 잊혀지는 거다.


 안 그래도 성우 교체 이슈 때 불거진 메갈 관련 사건으로 인해 무슨 일만 났다하면 일부 독자들이 메갈이 어쩌고 하면서 사안의 중대성은 싹 빼놓고 남혐 작가 OUT, 웹툰 이야기 NO 이런 식으로 귀결시켜서 작가 VS 독자 대립 구도가 끝없이 반복되고 있는 마당에, 이제는 작가들끼리 남녀 성별로 편 가르고 싸우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으니 총체적 난국이 따로 없다.


 두 번째 문제는 이런 민감한 이슈에서 침묵하는 작가를 무조건 적으로 돌리는 점이다.

 플랫폼에 충성하고 같은 작가들끼리 이간질시키는 부역자 같은 작가라면 또 몰라도. 그런 이권과 거리가 먼 작가들까지 싸잡아서 내부의 적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지각비와 블랙리스트 등에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는 사활을 걸고 적극적으로 항의를 할 수 있다.

 허나, 그런 문제의 범위 안에 들어 있다고 해도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아서 숨죽이고 조용히 사는 작가들보고 지금 당장의 생계를 접고 저항 운동에 동참하라고 하는 게 과연 온당한 일인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아무리 대의와 명분이 있어도, 동참할 것을 강요하고. 뜻을 함께 하지 않는 자, 같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자들을 적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좋지 않다.

 촛불 시위로 예를 들어 보자. 광장에 나가 직접 촛불을 들고 시위에 참가한 국민이 있지만. 반대로 시위에 나가지 않고 집에 있고. 그 시간에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간 국민도 있다. 시위에 나가고 싶어도 여건상 나갈 수 없는 사람도 분명 있다는 소리다.

 비록 시위에 나가서 자기주장을 뚜렷하게 하지 못했다고 해도 국민 여론은 하나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촛불 시위가 벌어진 계기가 된 국정 농단의 중심에 있었던 권력 실세가 구속되고 대통령 탄핵까지 이루어지게 됐다.


 지각비, 해외 정산 미지급 이슈 등등. 웹툰발 대형 이슈들이 신속하게 진행되어 빠른 결말로 이어진 것은, 피해 당사자의 호소만 먹힌 게 아니라 거기에 호응하는 여론이 뒷받침을 해주어 웹툰 작가 협회 등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개입할 수 있게 해준 경향이 크다.

 지각비, 해외 정산 미지급, 블랙리스트 같은 것들이 나쁜 것이란 사실은 다른 작가들도 잘 알고 있고. 그런 작가들의 뜻이 여론 형성에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호적인 여론은 오로지 독자들만으로 구성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작가들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했기에 거기에 이를 수 있는 거다. 그 공감대가 없었다면 소수의 목소리로 묻혔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재 SNS에서, 눈에 띄는 지지와 말, 행동을 하지 않으면 무조건 적이라고 인식하고 몰아붙이는 것은, 다른 작가들의 동참을 고사하고. 우호적인 여론 형성조차 되지 못할 가능성을 크게 만드는 악수 중에 악수다.

 예로부터 장르 업계에서 플랫폼과 작가가 갑을 관계 관련 문제로 충돌할 때의 싸움은 서로 고소 고발장을 날리는 법리적 다툼이 아니라 여론전이 됐다. 여론 형성에 실패하면 실패한 쪽이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인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안에서 사과를 빙자한 변명이 올라오고,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작가끼리 이간질 시키는 것 등의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는 거다.

 피아를 구분하지 못하고 감정에 치우처진 말과 행동을 해서 없던 적도 새로 만들어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지 말고, 냉정하고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잠뿌리
http://jampuri.egloos.com/ <- 변방의 작은 블로그인 이글루를 10년넘게 운영.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만화 전반에 걸쳐 밥먹듯이 리뷰를 하는 헤비 리뷰어 겸 경력 15년차 장르 소설가 (최근 장르 소설 연재작 적인왕) 게임/소설/만화 시나리오, 원고, 필사, 교정, 칼럼 등등 외주 일거리 환영! [jampur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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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진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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