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인문학도가 읽는 웹툰 ② <3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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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ssida
2018-02-17 10:53:51
조회수 : 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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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웹툰 <3인칭>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은 원작자에 있습니다. 원작자의 요청이 있을 시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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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3인칭> '쉽지 않은 사랑 이야기'에 대한 작품이다. 그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인 노조기는 AV를 보고 그 안의 여배우 나카지마 후미히메에게 사랑에 빠진다. 그가 사랑에 빠진 경로는 너무나도 극단적이고 자극적이어서, 필자는 '쉽지 않은 사랑'이라는 표현이 오히려 반어법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한번 그 충격에서 벗어나고 나니, 오로지 한 인간에게 닿고자 지고한 노력을 다하는 인간의 모습이 느껴졌다. 웹툰 <3인칭>에는 성매매, 관음증, 진실과 가상의 경계 등 많은 주제의식이 집약적으로 녹아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 노조기의 행보에 초점을 맞춰 그의 사랑은 어떤 것이었는지, 또 한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노조기는 작중 초반부터 나카지마 후미히메에게 닿기 위해 굉장한 행동력을 보인다. AV를 몇 번이고 돌려보며 소위 '구글링'을 하는 것은 물론, 직접 일본까지 몇 번이고 방문하기도 한다. 또 노조기 본인조차도 진짜인지 알 수 없어 의심스러워하는, 나카지마 후미히메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를 수집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노조기의 행동은 스토커와 다를 바가 없어보인다.

나카지마 후미히메라는 이름에 출신지는 오키나와인 사람

키는 157cm, 몸무게는 49kg B.85 W.59 H.90, 혈액형은 O형인 사람

길거리 캐스팅으로 발탁되어 AV배우로 데뷔해 활동 중인 사람

이상형은 정돈된 눈썹에 샤기컷이 어울리는 남자, 취미는 요리인 사람

 

그런데 이렇게 사랑하는 이의 정보를 끌어모으는 일은, 사실 우리도 사랑에 빠졌을 때면 늘상 하는 일이다. 가령 연인과 카페에서 마주앉아 차를 마시고 있다고 해보자. 우리는 상대방을 마주보고 있어도 그 사람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내가 없을 때는 무엇을 하는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말투와 표정, 몸짓 등의 조각난 정보를 모아 그 빈 자리를 상상하고 메꾸려 든다. 존 암스트롱은 그의 저서 <사랑의 발견>에서 이러한 현상에 대해 설명한다.

"아마도 인간 근본에서 가장 근본적인 사실은 자신을 경험하는 일이 타인을 경험하는 일과는 크게 다르다는 것이리라.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다른 이들의 생각과 감정은 그들의 행동과 말을 인식함으로써 겨우겨우 채집하듯 알아가는 수밖에 없다. 고독을 느낀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내적인 삶과 타인의 경험 사이에서 느끼는 심연의 고통이다." (1)

즉 타인에 대해 관심을 갖고 알아가는 것이란 파편화된 상대의 모습을 한 명의 인격으로 재구축하는 과정이다. 사랑하는 이를 알기 위해 정보를 끌어모으려 고군분투하는 것은 노조기 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는 일인 것이다.


그런데 노조기는 그토록 열성적으로 정보를 모았음에도, 그 정보만으로 나카지마 후미히메가 어떤 사람일지 판단하려 들지 않는다. 노조기라는 인물이 징그러운 스토커와 구분되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그 대신, 노조기는 후미히메 본인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이때 당사자의 반응이 호의이건 혐오이건 그는 개의치 않아 한다.

"맞지, 일방통행. [...] 정말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그 일방통행이라는 말. 들어도 그 사람에게 듣고 싶어."

"만나서, 직접 만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이렇게 이기적인 스스로를 깨닫게 해줘서 고맙다고."

관계는 기본적으로 쌍방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노조기는 이를 이해하고 있다. 본인의 감정이 지극히 일방적이고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후미히메 본인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렇듯 노조기는 나카지마 후미히메를 한 명의 인간으로 바라보며 지극히 존중하였다.

진짠지 아닌지도 모르는 인터넷 정보일지언정- 그녀를 찾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것들이야

하지만, 이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어

그녀가 사람이라는 거

모든 수식어에 앞서 사람이라는 거.”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 비트겐슈타인

노조기는 상대방에게 닿고자 하는 지극한 마음으로도 알 수 없는 공백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 빈 자리를 나카지마 후미히메 본인에게서 나온 반응 -그것이 호의이건 혐오이건-으로 채우려 했다. 이처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란 바로 내가 말할 수 없는 (혹은 인지할 수 없는) 상대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 공백을 끌어안고 나서야 그 빈 자리로 상대방을 초대해들일 수 있다. 그 다음에야 비로소 내 시선으로 왜곡되지 않은 상대방을 바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존 암스트롱 또한 공백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사랑에 있어 필수불가결하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경험이 자신의 경험과 어떻게 다를 수 있는 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것이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상상력은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욕구에 부응하는 행동을 할 수 있을 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1)


그런데 공백을 상상해야만 하는 것은 비단 노조기 뿐만이 아니다. 작중 등장인물인 권종원은 공백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노조기에게 방을 빌려주고 나카지마 후미히메를 찾을 결정적인 정보를 주는 등, 권종원은 악인이라 단정짓기는 어려운 인물이다. 그러나 권종원은 후미히메와 3개월 간의 연애를 끝낸 노조기를 위로한답시고 성희롱에 가까운 폭언을 가한다.

어차피 AV배우고 일본x인데 뭘 그렇게 그러냐. 태극기 꽂았다고 생각해~ 애국자네 노가리.”

권종원에게 악의는 없었을 것이고, 그 말이 진심으로 위로가 될 거라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상상력의 부재는 자각없이 무도한 폭력을 휘두르게 만든다.


사람은 자신의 렌즈를 벗어날 수 없다. 타인을 진정으로 바라보는 데 필요한 것은 그런 내 시선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빈 자리로 상대방을 초대하는 것이다. 그런 사랑을 했던 노조기는 AV 배우이기 이전의 인간 나카지마 후미히메를 보았다. 그리고 그런 노조기를 바라보는 권종원은 상상력 부족으로 인해 그들의 연애를 바로 보지 못한다. 이처럼 웹툰 <3인칭>은 다수의 시선들이 촘촘이 얽힌 작품이며, 우리는 우리 밖의 모든 것에 있어서 결국 제 3, <3인칭>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판단내리길 유보하고 공백을 끌어안을 상상력을 갖출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으로 무언가를 바라볼 준비가 된다. 사랑할 준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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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존 암스트롱, 사랑의 발견. 작가정신.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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