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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업보 덜어내기- <라이온킹>의 경우

최서윤  |  2019-07-30 18:01:37
 | 2019-07-30 18: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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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전 많은 우려와 악담에도 불구하고, <라이온킹> ‘실사화(라기에는 대부분이 CG지만)버전은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전세계 수익은 10억 불을 돌파했고, 한국에서도 2주간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다. 아이의 손을 붙잡고 영화관을 찾은 가족 단위 관람객, 기술 발전의 현황을 목도하고자 하는 블록버스터 팬들, 얼마나 망쳐놨는지 직접 확인하겠다며 팔짱 끼고 본 원작주의자들까지 모두 모인 결과일 테다.

 

장기간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잔망스러운 표정의 심바로 둘 정도로 원작 캐릭터를 애정한 나 역시 회의적인 마음으로 극장을 찾았다. 예상했던 것 보다 영화가 괜찮아서 좀 놀랐다. 역시 욕하기 전에 직접 한 번 봐야해.

 


당시 프사.jpg

▲당시 프사.jpg



돈이 가장 중요했겠지만, 작품에 수정할 부분이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실사화 프로젝트의 동기로 보인다. 과거에 크게 성공을 거둔 작품 안의, 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문제가 될 법한 설정과 표현들을 수정한 뒤 다시금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스민의 적극성을 주로 성적 매력을 드러낼 때 부여했던 1993년과 달리, 2019년의 <알라딘>은 자스민을 정치적 의식과 역량을 보유한 인물로 그리며 그의 운신의 폭을 넓힌다. 성역할 고정관념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진 현 시대를 반영한 것이다.

 

그렇다면 <라이온킹>에서는 무엇이 수정됐을까? 주로 인종적 편견이 반영된 설정들이다. 1994년 만들어진 <라이온킹>에서 악역 사자가 지닌 검은 갈기, 하이에나 무리들의 말(“Que pasa?”)과 몸짓 등에서 특정 문화권과 인종적 특성을 지닌 캐릭터가 악역을 전담했던 시대의 잔재를 발견할 수 있다. 2019<라이온킹>에는 역할에 따른 억양의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는다(여전히 비서는 영국 억양으로 말하지만). 또한 백인 배우가 주인공 심바를 연기했던 1993년과 달리, 2019년에는 주인공을 비롯해 왕국에 살고 있는 대부분(선역과 악역 구분 없이)의 목소리 연기를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맡았다. <라이온 킹>의 배경이 아프리카임을 감안할 때 이편이 더 자연스럽기도 하다.

 

 


도널드 글로버와 심바

▲도널드 글로버와 심바


 

많은 사람들이 반감을 표한 캐릭터 디자인 역시 인종적 편견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외형과 성격을 연결 짓는 일에는 편견이 개입되기 쉽다(많은 한국 웹툰에서도 발견되는 대목이다). 성격을 시각화하기 위해 편견을 개입해 캐릭터를 조형하는 것 대신, 2019<라이온킹>은 실제의 동물들의 표정과 몸짓을 재현하는 방향을 택했다. 이는 인간중심적 태도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반려동물과 함께 행복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관점을 그대로 투영하기보다, 그들의 언어를 익힌 뒤 그들의 시선에서 행동을 해석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이런 관점에서 존 파브로 감독은 인간처럼 풍부하게 표정을 얼굴로 드러내는 가상의 동물을 '창조'하는 대신, 실존하는 동물을 가능한 그대로 그려내는 길을 택한 것 아닐까? <라이온킹>을 본 인간들이 동물의 언어와 몸짓을 학습하기를 기대하면서.

 

물론 너무나 '동물적인' 캐릭터가 지극히 인간적인 목소리로 감정을 잔뜩 실어 영어로 말하니 괴상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영상의 방향성을 포토리얼리즘으로 설정했다면, 배우의 연기지도와 음악 연출에서도 그 점을 고려해야 하지 않았을까? 비욘세의 경우는 특히 심했다. 작 중 배역에 녹아들지 않은, 그냥 비욘세다. 그가 감정을 폭발시키며 노래 실력을 화려하게 뽐낼 때마다 에바라고 느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삼진에바였다. 성인이 돼서 만났을 때,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을 부를 때, 'spirit'을 부를 때. 특히 원작에서 썸 타는 두 사자의 간질거림을 표현했던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2019년 비욘세의 호통과 기교 자랑으로 성적 긴장이 1도 없어졌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포토리얼리스틱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기 동물들은 귀엽다는 거다. 아기 심바, 아기 품바를 처음 보는 순간 너무 귀여워서 소리 지를 뻔했다. 털 많은 소형 동물들은 아기가 아니더라도 귀엽다. 특히 티몬이 이렇게 귀엽게 나온다고 왜 아무도 말 안해줬지? 귀여움을 즐기기 위해서라도 <라이온킹>은 볼 만하다.


1994

▲1994




2019

▲2019



 

인종적 편견을 덜어낸 것 외에도 변화가 있다. 존 파브로 감독이 이 프로젝트를 수락한 이유가 아마 이 씨퀀스를 연출하는데 있지 않을까 짐작될 정도로, 하이에나의 추격 장면에 긴박감이 넘친다. 감독의 영혼이 담긴 연출이라고 느꼈다. 그들이 떼로 모여 끼익끼익 울어댈 때, 그리고 우두머리 쉔지가 묵직하게 위협하고 간교하게 속삭일 때 악당으로서의 매력과 존재감은 강화된다.

 



▲하이에나가 이렇게 무섭다


감독의 영혼이 느껴졌던 또 다른 시퀀스는 심바의 깃털이 생명의 순환을 거쳐 라피키의 손에 도달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영화의 주제를 공들여 표현한 연출이다. 이것은 포식자의 2세 탄생일에 피식자들이 기뻐하며 고개를 조아리는 세계관의 어색함을 희석시키는 논리가 되기도 한다. 강한 자가 마음껏 포식하는 게 무엇이 문제냐는 스카의 입장과 달리, 무파사는 생명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순환되기 때문에 탐욕을 절제해야 하며 다른 동물의 복지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지도자다운' 가치관을 가졌기에 초식동물들도 그를 존중한다는 설정인 것이다.

 

감독의 영혼이 느껴지는 씬과 그렇지 못한 부분들과의 차이가 확연하다는 점은 아쉽다. 큰 고민 없이 원작을 재현해 숙제하듯 찍어 붙여 넘긴 씬들이 존재한다고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캐릭터의 태세전환이 갑작스럽게 느껴진다. 눈 앞에서 아버지가 사망한 트라우마를 너무 쉽게 극복하고 흥에 겨워 '하쿠나 마타타'를 부를 때, 날라와 재회한 뒤 사랑의 불꽃이 점화되기도 전에 급작스럽게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을 부를 때 등등. 노래 순서는 정해져있고, 갈 길은 멀고, 지금 빨리 이 노래가 나와줘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으니까 의무적으로 욱여넣은 느낌이랄까?

 

그러나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극장에서 <라이온킹>을 보는 것은 해볼만한 경험이다. 아기 동물들은 귀엽고, 명곡들을 빵빵한 음량의 5.1채널로 다시금 접하는 것도 즐겁다. 영화의 서사 자체가 구식인데 소소한 부분만 수정한다고 되는 것이냐, 굳이 리메이크 영화가 만들어질 필요가 있었느냐는 비판도 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관객들에게 검증된 쾌락을 제공할 수 있고, 창작자에게는 (제한됐지만) 뭔가 새로 도전해볼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하며, 디즈니는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프로젝트를 안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영화에 대해 아쉬운 점은,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열띤 대화를 나눔으로써 관객들이 함께 채워갈 수 있을 것이다.


[최서윤]
C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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