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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덕후가 빚어낸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전지적 독자 시점>

최서윤  |  2019-04-10 12:01:01
 | 2019-04-10 12: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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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독자시점(이하 전독시’>은 기념비적 작품이다. 작년 말 이미 누적 조회수 1000만을 넘겼고, 수많은 여성 독자들을 현대 판타지 장르로 끌어들였으며, 2차 창작 열풍을 불어 일으켰다. 웹툰화 가능성에 대한 소식도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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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독시>의 등장 시점은 예능프로그램 <전지적 참견시점>이 파일럿 방송으로 화제를 모으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전지적 참견시점>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의 제목은 플랫폼 이용자들의 호기심을 끌어당기기 충분했다의미 없이 공허한 패러디는 아니었다. 주인공 김독자는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하 멸살법’)>이라는 노잼소설을 완결까지 읽은 유일한 독자(讀者)이자 이수경의 유일한 아들(獨子)이다. 제목은 말 그대로 그런 독자의 시점이자 어떤 특수한 능력을 뜻한다. 그 능력에 대해서는 후술하겠다.

 

???: 나를 구원했던 소설 속 인물, 이제는 내가 구원할 때

<전지적 독자 시점>의 또 다른 주인공 유중혁은 작 중 소설 <멸살법>의 주인공으로, ‘회귀능력자이다. 회귀는 죽어도 모든 기억을 가지고 되살아나 최초의 시나리오로 돌아가는 능력이다. 1800번을 넘게 회귀한 덕에 <멸살법>의 연재 회차는 3000편이 넘었고, 덕분에(?) 유중혁은 김독자의 유년기를 내내 함께할 수 있었다. 양육자의 부재와 원만하지 못한 교우관계로 외로웠던 김독자에게는 구원이었다.

 

어느 날 <멸살법>의 공간과 내용이 작 중 현실에 펼쳐지고, 소설 속 괴수들과 등장인물들이 현실에도 등장한다. 현대 문명은 무너졌다. 이제 사람들은 모두 시나리오를 배정 받고, 도깨비들의 감시· 감독 아래 이것을 완수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사람들이 시나리오를 해결하는 과정은 여러 채널을 통해 중계되며, 재미나 감동을 주면 채널을 지켜보는 하늘의 별, 성좌들로부터 후원 받을 수 있다. 그러니까트위치.TV 같은 시스템을 떠올리면 된다. 성좌들은 재력도 능력도 권역도 제각각인데, 힘 센 성좌·  성운과 배후성계약을 맺으면 시나리오 진행에 유리하다. 다만 자유의지는 제한될 수 있다. 이점을 알고 있는 김독자는 배후 성좌를 선택하지 않고 시나리오를 진행하고자 한다.


그리고 높은 단계의 시나리오로 나아감에 따라 김독자의 판단은 옳았던 것으로 밝혀진다. 시나리오 초기에는 한없이 강해보였던 성좌들도 사실 스타스트림이라는 시스템에 구속된 존재였던 것이다. 김독자가 바라는 것은 시나리오를 강제하는 시스템으로부터 모두가 해방되는 결말. 이 무모해 보이는 목표는 혼자 이룰 수 없었고, 김독자는 동료들을 모으기 시작해, 3회차의 유중혁과도 동료가 된다. 함께 하는 시간이 누적되며 처음에는 그저 등장인물로 인식했던 이들의 이면을 알게 되고, 신뢰가 쌓이며 시나브로 감정이 깊어져 간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세계관

<전독시>의 뛰어난 점 중 하나는 동료들을 그리는 방식이다. 특히 여성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이 기존 판타지 소설의 결과 차이가 있어 많은 여성 독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요약컨대, 현실에서 여자 사람이랑 한 번도 제대로 대화해보지 못한 남자가 망상하며 왜곡시킨 여성 캐릭터가 개연성 없이 남자 주인공을 좋아하는 소설들과는 달랐던 것이다. 여성도 목표와 목적을 가진 입체적인 존재이고, 적성에 맞는 전장에서는 누구보다 강할 수 있으며, 카리스마를 지닌 채 무리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음을 <전독시>는 이야기 한다. 로맨스를 그리기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는 일도 지양한다. 오히려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로맨스 대신, 작가는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게 열린 행동을 보여주기를 택한다. 이 점은 <전독시>의 흥행과 2차 창작 열풍의 요인이 됐다. 독자가 해석할 수 있게끔 부러 빈틈을 남겨두는 전략. 다양하게 해석하며 의미를 덧씌우는 일 또한 여흥을 돋우는 유희가 될 수 있음을 <전독시>의 작가 싱숑은 알고 있다.


역사적 인물부터 신화적 존재까지 한 데 아우르는 방대한 세계관도 매력적이다. 그들 모두 이 소설에서 성좌로 등장한다.  “존재하는 것은 누군가의 시선을 통해 비로소 감각되는 것이라는 인식에 기반을 두는 세계관에 따라, 성좌들의 힘의 세기 역시 그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인구에 회자되는지를 따른다. 성좌들이 화신들과 배후성 계약을 맺는 주된 이유도 화신이 특정 시나리오에서 성좌의 설화를 재현해야 그들의 존재를 지탱할 수 있어서다. “스타스트림에서 성좌가 죽을 때는 모든 존재에게 잊혀질 때이기에. 설화가 특정 신화적 맥락에서 탄생했다면 그 설화를 지닌 성좌는 해당 신화를 토대로 개설된 성운에 소속된다. 이런 성운의 예로는 에덴, 올림포스, 아스가르드 등이 있다. 

 

어떤 대상을 읽는다는 것

성좌와의 계약을 거부한 김독자는 강해지기 위해 독자라는 특성과 관련된 능력을 개방하여 훈련한다. <멸살법>을 홀로 끝까지 읽은 독자의 능력은 독보적이었다. ‘등장인물 일람으로 상대의 요약된 정보를 훔쳐볼 수 있고, ‘책갈피로 특정 등장인물의 능력을 저장한 뒤 그 능력을 읽어사용할 수 있으며, ‘전지적 독자 시점으로 이해도 높은 상대에게 빙의하여 간섭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주어진 정보를 읽어들인다고 대상의 전부를 이해하는 것은 아님을, 이야기가 계속 돼야지만 알 수 있는 것이 남아있음을 실감한다. 

 
이처럼 인물들이 특화된 능력을 계발하고 사용하여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난관을 창의적으로 뚫거나 우회하는 패턴의 반복이 <전독시>의 큰 줄기를 이룬다. 패턴이 반복됨에 따라 긴장감과 몰입도가 저하되기도 하지만다양한 하위 장르로의 변주, 적절하게 배치된 농담, 캐릭터 간의 화학 반응, 아직 회수되지 않은 떡밥 등이 이 작품을 계속 읽고 싶게 한다. ‘은밀한 모략자는 누구인가? ‘의 정체는 진정 무엇인가? 김독자는 누구도 잃지 않고 모두와 함께” ‘단 하나의 설화의 끝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오직 싱숑만이, 이 작품의 결말을 알고 있다. 다만 독자로서 이런 예언은 할 수 있겠다. 이제까지 작품의 질을 앞으로도 이어간 뒤 막이 내린다면, <전지적 독자 시점>은 아주 오래도록 기억되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최서윤]
C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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