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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이중잣대를 꺾는 <에이리언 아이돌>

최서윤  |  2019-10-31 17:38:05
 | 2019-10-31 17:3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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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런 신인 아이돌이 있다.

PD가 외국인 멤버에게 서툰 한국어로 웃음을 연출할 것을 주문하자 보시다시피 저는 한국어가 서툴지 않아요. 설령 제가 서툴다 한들, 그걸 왜 개그 포인트로 만드는 겁니까? 자국어가 아닌 언어가 서툰 건 당연한 일 아닌가요?”라고 정색한다.

PD는 항변한다.

우리가 뭐 나쁜 의도겠어요? 웃자고 하는 거죠.”

지지 않는다.

타인을 놀리는 것으로 밖에 웃길 수 없다면 웃기지 않는 게 낫습니다. 웃고 있는 다수 뒤에 움츠러드는 소수가 있어요.”

감히신인 아이돌이 PD에게 할 말 다 하다니!

 


라이(앞선 발언의 주인공)

▲라이(앞선 발언의 주인공)



다른 멤버들도 놀란 눈치

▲다른 멤버들도 놀란 눈치


 

웹툰 속의 아이돌이라서, 게다가 외계에서 온 아이돌이라서 가능한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웹툰 <에이리언 아이돌> 속 그룹 에이아이의 멤버 라이, , 아이나, 루카는 외행성 라마로부터 왔다. 지구로부터 504 광년 떨어진 행성 라마는 지구와 매우 흡사한 기후와 환경을 가진 곳이었다. 이제 그곳은 다른 종족의 습격으로 소멸되고 없다. 대부분의 라마인은 멸종됐고, 주인공을 비롯한 소수의 라마인들만이 라마가 존재했음을 증명한다.


주인공 일행은 지구로의 순간이동에 성공했기에 살아남았다. 하지만 하필 이동한 곳이 연예기획사 대표의 집. 라마인들은 지구인보다 좀 더 높은 평균 지능과 체력, 그리고 미모를 가졌고, 대표는 라마인들의 외모에 단박에 상품성을 발견한다. 대표의 데뷔 제안에 고민하던 라마인들은 사라진 문명을 기록한다는 대의로, 자신들의 언어로 활동 한다는 전제 아래 수락하는데. 그때는 몰랐겠지, 아이돌이 이렇게 극한 직업일지.

 

지구 보다 진보된 문명을 이뤘던(과거형이 되어 슬프다) 라마인에게 지구인의 인권감수성은 놀랍다. 연예 산업은 더욱 야만적이다. 방송 진행자는 피부색이 어둡다는 점에 기인한 편견을 버젓이 드러내며 웃음거리로 삼는다. 일종의 인종 차별이다. 체구가 작고 예쁘장한 남자 아이돌에게는 여자보다 예쁘다는 수식어가 붙으며, 남성 아이돌의 여장벌칙이 된다. 성별 고정관념에 기인한 것이다. “불필요한 위계질서로 인해 돌출되는 위기 상황에 능숙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언론의 먹잇감이 되고, 온갖 사생활이 헤집어져 전시되기 일쑤다. 이 모든 것이 라이는 버겁다.

 

그나마도 남성 아이돌은 형편이 나은 편이다. ‘에이아이는 남성 아이돌로 활동하고 있다. ‘성 미분화 병존체인 라이가 소년으로 보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여기서 잠깐. 라마에서는 성이 확정되어 태어나지 않은 존재가 적지 않고, 이를 성 미분화 병존체라고 칭한다. 이들은 28세까진 신체 부위의 특수화가 진행되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호르몬 용법으로 18세 이후부터 신체적 성별을 확정지을 수 있다.


라이는 때가 되면 신체적 성별을 여성으로 확정하려 했지만(라마가 사라진 지금으로서는 호르몬 용법은 요원한 상태지만), 라마에서 보고 배웠던 여성성과 지구에서의 그것이 너무나 달라 혼란스럽다. 라마에서는 여성, 남성, 양성, 중성 등 다양한 성의 스펙트럼이 존재하고, 여성의 형태나 역할도 특정되지 않았다. 라마에서 보고 자란 여성들은 라이에게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말해주었지만, 지구, 특히나 한국에서는 달랐다. 성별이분법이 잔존하고, 여성에게 가느다란 몸과 부드러운 성정을 가지기를 강요했으며, 여성에게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대중의 시선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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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지구인과 관계 맺으며 자신이 앞으로 발붙이고 살 곳은 지구임을 받아들인 라이는, 지구에서의 억압에 함께 맞서 싸우기로 한다. 멤버 한 명의 여장희화화 벌칙 대신, 멤버 모두가 몸의 선을 강조하거나 하늘거리는 의상을 걸치고 색조 화장을 한 뒤 무대에 올라 진지하게 공연을 펼친다.


이를 모티브로 시작한 에이아이 챌린지는 소셜 미디어에서 지목 받은 대상이 미션을 수행한 사진을 찍어 올린 뒤 다음 미션인을 지목하는 캠페인이다. 남성일 경우 화장을 하고,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고 액세서리를 착용한 뒤, 멍한 표정 또는 무해한 미소를 띤 채 사진을 찍어 올린다. , 희화화는 없도록. 참여하는 사람이 여성일 경우 몸매가 드러나지 않는 옷을 입고 액세서리는 하지 않은 채, 눈에 힘을 주고 입을 꾹 다문 무표정을 짓는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 한국사회의 성별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라이와 멤버들이 기획한 소셜미디어 놀이이다. 라이는 또한 데이트 폭력 및 불법유출 사진의 피해자임에도 질타 받는 여성 아이돌과 적극적으로 연대한다.



여성아이돌2.jpg



<에이리언 아이돌>20175월부터 저스툰에서 연재되고 있다. 기획은 훨씬 이전에 이뤄졌을 것이다. 오지 않은 미래를 기다리며. 그리고 지금 작품을 보는 독자는, 이 작품이 놀랍도록 동시대적이라 느낀다.

 

이를 테면 지난 9AOAMnet <퀸덤>에서 선보인 마마무의 너나 해커버 무대를 보고 나는 에이아이를 떠올렸다. 남성 댄서가 화려하게 화장한 얼굴로 몸매를 드러내는 옷을 입고 고혹적인 보깅 댄스를 추는 동안 걸그룹’ AOA는 직선을 강조한 슈트를 입고 힘이 넘치는 군무를 추며 노래한다. “솜털이 떨어질 때 벚꽃도 지겠지. 나는 져버릴 꽃이 되긴 싫어. I'm the tree.” 이 영상은 화제를 모으며 유튜브 조회수 1000만 건을 훌쩍 넘었다. 잠시지만 에이아이가 그리는, 성별이분법이 무너진 세계가 도래한 것으로 보였다.




 

작가가 작품을 기획했을 때의 마음을 상상해봤다. 대중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한국의 문화와 산업을 참을 수 없는 스스로를 보며 외계인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이 얼마나 이상하냐고 모두를 흔들며 묻고 싶은 마음. 이 모든 것을 낯설게 보게끔 돕고 싶은 창작자의 욕망.


하지만 그 간절함은 가끔 <에이리언 아이돌>학습만화처럼 느껴지게 한다. 지적인 라마인들의 학술적인 문어체 대사들이 특히 그렇다가끔 온라인 반응을 너무 리얼하게 재현해낸 것을 볼 때는 숨이 턱 막혀오기도 한다. 그러나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계속 볼 가치가 있다. 고전미가 느껴지는 그림체와 푸른 색채는 아름답고, 새로이 시작된 풋풋한 애정과 상처 입어 처연한 지난 사랑과의 삼각형은 이 모든 이야기의 끝을 궁금하게 한다무엇 보다 조금쯤 앞으로 나아갔나 싶으면 참담한 소식을 전하며 주저앉히려드는 한국사회에는, 아직 외계인의 시선이 필요하다에이아이 모르는 사람 없게 해주세요.




[최서윤]
C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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