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의 모든 이야기는 이미 웰스의 손을 거쳤다 <허버트 조지 웰스>
by 김봉석
2018-07-02 11:2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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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버트 조지 웰스, 우주전쟁

1938년, 미국의 한 라디오 방송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외계인이 지구에 착륙하여 도시를 파괴한다는 내용의 긴급 보도였다. 방송을 들은 사람들은 겁에 질렸고 일부는 대피하기도 했다. 방송은 실제상황이 아니었다. 허버트 조지 웰스가 1898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우주전쟁>을 각색하여, <시민 케인> <악의 손길> 등을 만든 거장 오손 웰즈가 젊은 시절에 연출한 라디오 드라마였다. 사람들을 깜쪽같이 속인 오손 웰즈의 연출력도 탁월했지만 우주에서 온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한다는 스토리를 그럴듯하게 만들어낸 조지 웰스의 상상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방송이었다. 1차 대전의 기억이 생생한데 다시 전쟁의 기운이 감돌던 불길한 시대의 공기를 정확하게 짚어낸 소동이었고.



허버트 조지 웰스, 타임머신 허버트 조지 웰스, 모로 박사의 섬

<우주 전쟁>의 작가 허버트 조지 웰스는 1866년에 태어났다. 신이 지배하던 중세는 이미 막을 내렸고, 인간의 이성과 의지가 세계를 이해하고 정복할 수 있다고 믿던 순진한 시대였다. 조지 웰스의 환경은 대단히 열악했다. 하층 계급의 아들로 태어난 웰스는 일을 하면서 장학생으로 겨우겨우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교사가 되었지만 병에 걸려 포기하고 만 웰스는 집필에 몰두한다. 소설과 평론 등을 다양하게 발표하던 웰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명성을 얻게 된다. <타임머신> <모로 박사의 섬> <우주 전쟁> 등의 SF로 인기를 끄는 한편 노동당과 페이비언 협회에 가입하는 등 정치적 활동도 활발하게 전개했다. 웰스는 단지 미래를 내다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고 싶어 했다.



허버트 조지 웰스가 살았던 시대는 역동적이었다. 급속하게 과학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의 모든 것이 변화해갔다. 전기가 보급되어 밤의 생활이 바뀌는 것을 보았고, 생물의 진화와 유전자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접할 수 있었고, 상대성이론의 발표와 양자역학의 시작도 지켜보았고,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통해 비행기와 탱크가 만들어지고 어떻게 쓰이는지도 보았다. 인간이 모든 것을 만들어내고, 모든 것을 파괴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시시각각으로 새롭게 변하는 시대의 한복판에서 웰스는 소설을 썼다. 정치적 활동을 했다. 웰스의 소설은 단지 상상만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시대를 살아가면서 얻어낸 비전으로 쓰인 걸작들이었다.



SF(Science Fiction)의 시작이 무엇인가는 의견이 분분하다. 멀리는 <유토피아>나 <걸리버 여행기>를 들기도 하고, <어메이징 스토리>의 발행인이기도 한 휴고 건스백의 <랄프 124C41+>를 꼽기도 한다. <타임머신>의 웰스와 <해저 2만리>의 쥴 베르느도 유력하다. 웰스가 쓴 작품들을 들여다보면 이후 수많은 SF에서 다루는 소재를 이미 섭렵했다. <타임머신>의 시간여행, <모로박사의 섬>과 <투명인간>의 유전자 공학, <우주전쟁>의 외계인, <달의 첫 방문자>의 우주여행 등을 비롯하여 치명적인 세균을 이용한 테러, 심해와 밀림의 기묘한 생물들, 우리의 세계와 겹친 다른 차원의 공간들, 소행성의 지구 충돌, 약물을 통한 신체와 정신의 상승 작용 등등 그 시대에는 상상이 불가능했던 컴퓨터와 사이버스페이스를 제외하면 SF의 모든 이야기는 이미 웰스의 손을 거쳤다고 할 수 있다.



허버트 조지 웰스, 눈먼 자들의 나라 외 담장에 난 문

허버트 조지 웰스의 소설이 반드시 바람직한 미래만을 그리는 것은 아니다. 종말의 세계나 악몽에 가까운 미래를 보여주기도 한다. 과학기술의 경이를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라 끔찍한 해악도 그려낸다.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죽음 이후나 불가해한 영역을 다루기도 한다. 웰스는 일방적으로 과학을 예찬하지 않는다. 또한 허버트 조지 웰스는 인간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인간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와 사랑이 들끓던 시대에도 웰스는 여전히 회의하고 의심했다. 단편 <담장에 난 문>에서 조지 웰스는 ‘우리는 세상을 규칙과 상식으로 보고, 그에 따르면 그 출구는 임시 울타리와 구덩이일 뿐이다. 우리의 환한 대낮 같은 기준으로 본다면, 윌리스는 분명 안전한 세계에서 나가 어둠과 위험과 죽음을 향해 걸어 들어간 것이다........하지만 윌리스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라고 묻는다. 인간의 지식과 문명이 전체 우주에 비하면 얼마나 왜소한 것인지 웰스는 깨닫고 있었다. 웰스는 언제나 냉정한 눈으로 현실을 바라보고, 인류가 어디로 가야할 것인지를 숙고했다. 현실을 예리하게 지켜보고 풍자하면서도 상상력의 크기만큼은 무한하다. 그것이 지금도 웰스의 소설을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위대한 힘이다.

김봉석
Que Sera Sera! 2017 부천영화제 프로그래머, 만화 웹진 에이코믹스 前 편집장, 익스트림무비. 나의 대중문화표류기,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전방위 글쓰기, 컬처매거진 브뤼트. 평론가라기보다 애호가. 주로 좋아하는 것들을 보고 듣고 쓴다.
만화와 영화 양쪽 분야의 전문가로 활발한 대외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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