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대중예술가에게 절실한 재능, 스티븐 스필버그
by 김봉석   ( 2018-04-11 13:29:30 )
2018-04-11 13: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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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대중예술가에게 절실한 재능, 스티븐 스필버그



지난 3월 28일 개봉한 <레디 플레이어 원>의 관객 수는 4월 7일까지 133만이었다. 크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정도다. 북미에서는 4월 1일에 첫 주말에 4,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2045년, 가상현실 게임의 세계에서 벌이는 모험을 그린 <레디 플레이어 원>은 스필버그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1980년대 이후 미국 대중문화에서 활약했던 온갖 캐릭터와 상징들이 등장한다. 그 시절 함께 성장했던 사람들이라면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는 매력적인 영화다.

모든 대중예술가에게 절실한 재능, 스티븐 스필버그


2000년대 들어, 스티븐 스필버그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거물이자 위대한 상징이 되었다. 80년대 할리우드 영화를 블록버스터로 바꿔놓았고, 2000년대 이후 오락만이 아니라 예술성으로도 인정받는 거장이 되었다. TV 영화 <듀얼>과 영화 데뷔작 <슈가랜드 특급>(1974)로 주목받은 스티븐 스필버그는 대부분이 실패할 것이라 생각했던 <죠스>(1975)로 대성공을 거두며 최고의 감독 자리에 등극했다. 그리고 <스타워즈>(1977)의 조지 루카스와 함께 블록버스터를 만들어낸 원흉인 동시에 할리우드의 신세기를 이끈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스필버그와 루카스는 바로 전 세대, 단지 몇 살 위의 감독들과도 전혀 다른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60년대 말과 70년대 초반은 반문화의 시대였다. 고전 할리우드의 세계는 무너졌고 실제 사회 역시 뒤죽박죽이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와 <이지 라이더>로 시작된 '뉴 시네마'는 <매쉬>와 <대부>로 이어지면서 할리우드를 바꿔낼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걸작인 테렌스 맬릭의 <천국의 문>이 참패를 하면서 할리우드를 접수한 것은 프랜시스 코폴라와 마틴 스콜세지가 아니라 스필버그와 루카스였다.

스필버그와 루카스가 원한 것은 흥행에서의 성공이었다. 영화적으로 <대부>를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흥행성적으로 압도하기를 원했다. <슈가랜드 특급>을 본 영화평론가 폴린 카엘은 스필버그가 '연출가 중 대단히 드문, 타고난 엔터테이너' 라고 칭찬했다. '샷을 배열하고 이야기를 우아하고 효과적으로 전개시키는 데 천재' 라는 말도 나왔다. 스필버그는 어딘가에 중독되거나 열광하면서 에너지를 뿜어내는 감독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다수의 요구에 맞춰낼 용의가 있는 '상업적인' 감독이었다.

그러면서도 스필버그와 루카스는 달랐다. 조지 루카스는 '나는 순수한 영화를 지향한다. 내러티브에 관심이 없다… 나는 매우 시각적인 연출가이며 사상보다는 감정을 추구하는 연출가다'라고 말했다. 루카스의 최고 히트작이자 전설이 된 <스타워즈>조차도 '이야기'가 탁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루카스는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를 활용하고, 다른 영화들에서 가져온 요소들을 적절하게 투여했을 뿐이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만들어진 <스타워즈>의 새로운 3부작이 젊은 날 썼던 활기찬 스토리에 비해 따분하고 어리석다는 것도 당연한 귀결이다.

스필버그는 이야기가 갖는 쾌감을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더욱 드라마틱하고 스펙터클하게 이야기를 변주할 줄 아는 감독이다. <죠스>,<미지와의 조우>,<레이더스> 를 거쳐 <쥬라기 공원>까지 초반에 만들어진 영화들은 가벼운 이야기를 신나는 영화적 쾌감으로 최대한 상승시킨 작품이다. 50년대의 SF영화와 모험 영화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면서, 어른과 아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적인 장면과 장치들을 가득 채워놓았다. 스필버그를 이야기의 연금술사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단지 이야기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스필버그의 이야기는 철저하게 영화적인 이야기다. 흥미진진하고 유쾌해 보이지만, 그것을 영상으로 보지 못한다면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들. 스필버그의 이야기를 찾아내는 재능은 <빽 투 더 퓨처>, <그렘린>, <구니스>,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 등 프로듀서로서도 탁월했다.


모든 대중예술가에게 절실한 재능, 스티븐 스필버그

80년대 스필버그의 영화가 먹힌 이유 하나는 반문화에 대한 피곤함이었다. 저항과 투쟁, 퇴폐와 향락, 분노와 좌절 대신 80년대의 대중은 사라진 권위와 가족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원했다. 일종의 '내면에 보존된 순진함, 더 나은 자아에 대한 감상적인 태도' 였고, 레이건과 부시의 보수주의가 흥했던 이유도 비슷하다. 스필버그는 대중의 욕망을 부드럽게 달래면서, 영화적 쾌감을 최대한 밀어붙였다.

그리고 스필버그는 재미있고 뛰어난 이야기를 찾아내는 데에는 정말 탁월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 이야기에 대한 감식안 그리고 그것을 영화적으로 완벽하게 구성하고 풀어낼 수 있는 능력. 그것이야말로 스필버그를 당대 최고의 감독이자 엔터테이너로 만든 이유였다. 언제나 모든 대중예술가에게 절실한 재능이다.

김봉석
Que Sera Sera! 2017 부천영화제 프로그래머, 만화 웹진 에이코믹스 前 편집장, 익스트림무비. 나의 대중문화표류기,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전방위 글쓰기, 컬처매거진 브뤼트. 평론가라기보다 애호가. 주로 좋아하는 것들을 보고 듣고 쓴다.
만화와 영화 양쪽 분야의 전문가로 활발한 대외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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