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소설의 미래'라 불린 [클라이브 바커]
by 김봉석
2018-03-13 10: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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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은 영화 연출에 도전했다가 쓴맛을 겪었다. 누구보다 영화를 좋아하고, 소설에서 영화적인 장면을 묘사하는 것은 탁월했지만 영화 연출의 재능은 부족했다. 하지만 스티븐 킹이 절찬한 소설가 클라이브 바커는 영화감독에서도 분명하게 족적을 남겼다. 클라이브 바커는 비록 영화감독으로 오래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데뷔작 <헬레이저>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한 남자가 신비스러운 문양이 새겨진 퍼즐상자를 만지작거린다. 이리저리 돌려보던 중, 갑자기 퍼즐상자가 혼자 움직이면서 벽이 갈라지고 빛이 새어나온다. 허공을 가르는 쇠사슬 소리와 살을 파고드는 갈고리, 사방에 흩뿌려지는 붉은 피. 끝없는 비명. 난도질영화의 유행이 지나고, <나이트메어>의 신선함도 바래져갈 때 등장한 <헬레이저>는 파격적이었다.


난도질 영화의 주류는 살인마였다. 정신이상이거나 날 때부터 괴물인 살인자가 끔찍한 살육을 저지르는 이야기.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라는 옛말을 증명하는 설정이지만 어딘가 아쉬웠다. 공포라는 것이 단지 죽음에 대한, 죽음을 피해 다니기 위한 발악에 불과한 것일까? <헬레이저>는 난도질영화의 '피바다‘를 계승하면서 공포의 근원을 파헤치고,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까지 파고들었다. 고전적이면서도 새로운 감성의 <헬레이저>는 공포영화광에게 짜릿한 경험을 제공했다. <헬레이저>에 등장하는 고통의 수도사 핀헤드는 프랑켄슈타인, 드라큘라 등과 함께 공포영화의 인기 캐릭터가 되었다.



클라이브 바커는 1952년 10월 5일 영국의 리버풀에서 태어났다. 클라이브 바커는 어린 시절부터 영화, 연극 등 다양한 예술 장르에 관심이 있었다. 런던으로 간 클라이브 바커는 시나리오를 쓰고, 단편영화를 만들면서 언더그라운드 연극무대에도 섰다. 관심은 인간의 어두운 면을 파고드는 공포물이었다. 잡지에 게재된 클라이브 바커의 단편은 대단한 인기를 누렸고, <피의 책>이란 제목으로 묶여 출간된다. 이 책을 읽은 스티븐 킹은 클라이브 바커를 ‘공포소설의 미래’라고 극찬했다. 클라이브 바커는 자신의 단편을 각색한 영화 <헬레이저>로 대성공을 거둔다. 150만달러의 예산으로 만들어진 <헬레이저>는 무려 20배가 넘는 흥행수익을 올렸다. 속편에는 제작자로 참여했다. 하지만 <헬레이저> 이후 감독을 맡은 <심야의 공포>(1990), <일루션>(1995)은 비평과 흥행 모두 낙제점을 받았다.



클라이브 바커는 다양한 작업에 손을 댔다. 공포소설, 공포영화, 나레이터로 출연하여 공포물에 대해 설명한 다큐멘터리, 아이들을 위한 동화 <더 씨프 오브 올웨이즈>, 판타지소설 <아라바트 쿼텟> 등등. 대성공을 거둔 게임 <제리코>의 기획자이기도 하다. 클라이브 바커의 다양한 활동과 역사를 보고 있으면, 가장 뛰어난 재능은 ‘creator’라고 생각한다. 직접적인 연출보다는 전체적인 설정과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스토리의 얼개를 만들어내는 것. 실패작인 <심야의 공포>에서도 설정과 캐릭터는 뛰어났다.


클라이브 바커는 H.P. 러브크래프트에게 큰 영향을 받았고, 소설들을 읽어보면 단박에 느낄 수 있다. 영화로도 성공을 거둔 <미드나이트 미트 트레인>은 뉴욕 지하철에 나타난 살인마의 이야기다. 우연히 살인마의 도살 현장을 목격한 남자는 겨우 그를 죽이고 살아남는다. 하지만 그는 살인마의 뒤를 이어, 주인을 위해 사람 고기를 바쳐야하는 신세가 된다. ‘우리는 도시의 아버지들이다. 그리고 어머니들이기도 하고, 딸과 아들들이기도 하지. 우린 건축가이고 입법가이다. 우리가 이 도시를 만들었다.’고 말하는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클라이브 바커의 두 번째 영화 <심야의 공포>의 원제는 'Night Breed' 즉 ‘밤의 혈족’이다. 태고적에는 인간 이외의 다른 ‘종족’이 있었다. 인간은 낮을, 그들은 밤을 지배했다. 평화롭게 지켜지던 약속은 인간에 의해 깨졌고 ‘밤의 혈족’은 지하로, 망각 속으로 숨어들었다. 요정, 요괴, 괴물 등이라고 통칭하던 것들은 인간에 의해 추방된 ‘밤의 혈족’인 것이다. <미드나이트 미트 트레인>에 등장하는 주인들은 인간의 ‘의식이 아니라, 더 깊고 오래된 자아에’ 뿌리박고 있는 공포의 존재다. ‘도시가 어떤 토대 위에 세워졌는지, 도시의 삶이 무엇 덕택에 지탱되는지 절대 모르’고 우리는 살아간다. 태곳적, 무한의 시간과 공간 너머에 존재하는 공포를, 클라이브 바커는 보여준다.


클라이브 바커의 소설에는, 현대의 대중 소설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이 있다. 섹스, 폭력, 자기회의, 사랑과 정열, 분노, 두려움, 유머 등등. 스티븐 킹의 소설이 정갈한 느낌을 주는 반면, 클라이브 바커의 소설은 영화 <헬레이저>처럼 끈끈하고 으슬으슬한 분위기다. 런던의 안개가 등을 타고 오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미지가 선명하다. <헬레이저>의 핀헤드를 한 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처럼.

김봉석
Que Sera Sera! 2017 부천영화제 프로그래머, 만화 웹진 에이코믹스 前 편집장, 익스트림무비. 나의 대중문화표류기,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전방위 글쓰기, 컬처매거진 브뤼트. 평론가라기보다 애호가. 주로 좋아하는 것들을 보고 듣고 쓴다.
만화와 영화 양쪽 분야의 전문가로 활발한 대외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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