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석 칼럼
'보이스카웃' 슈퍼맨이 소련의 지도자가 된다면 <슈퍼맨 레드 선>
by 김봉석
2017-04-10 10:52:42


마크 밀러 글/데이브 존슨,킬리언 플런켓,앤드루 로빈슨,월든 웡,폴 마운트 그림

지난 3월 공개된 <저스티스 리그>의 공식 예고편에는 슈퍼맨이 나오지 않는다. 원더우먼, 배트맨, 플래시, 아쿠아맨, 사이보그뿐이다. 그린 랜턴이 나온다는 말이 있었지만 아직은 비공식이다.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슈퍼맨이 죽은 것으로 마무리되었고, 부활은 당연하지만 과연 어떻게 등장할 것인가가 의문이다. 흑화된 슈퍼맨으로 등장할 것인가, 아니면 <인저스티스>처럼 분노에 사로잡힌 슈퍼맨이 나올 것인가. 아직은 상상뿐이다.



슈퍼맨은 흔히 보이스카웃이라고 불린다. 언제나 정의를 수호하는, 원칙을 준수하는 슈퍼히어로. <다크 나이트 리턴즈>에서 슈퍼맨이 정부의 편에서 중년의 배트맨과 싸우는 것을 보면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슈퍼맨은 늘 체제의 편이었다. 부패한 권력을 응징하는 경우는 있지만 그래도 슈퍼맨은 늘 체제 안에서 움직이기를 원했다. 마블의 시빌 워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슈퍼맨은 당연히 정부의 편에 설 것이다.

그래서 슈퍼맨을 약간 재미없게 혹은 재수 없게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늘 올바르고 정당함만을 추구하는 슈퍼히어로. 선과 악 사이에서 확고하게 선으로 규정되는 존재.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21세기에 본다면, 슈퍼맨은 너무나 고전적이고 고루하기도 한 슈퍼히어로다. DC에서 슈퍼맨을 내세워 21세기에 만든 <슈퍼맨 리턴즈><맨 오브 스틸>이 고전한 이유도 그런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끊임없이 진화한 배트맨에 비하면 슈퍼맨은 여전히 답답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니까.



국내에 나온 슈퍼맨 코믹스인 <슈퍼맨:시크릿 아이덴티티> <올스타 슈퍼맨> <슈퍼맨 버스라이트> <슈퍼맨 포 올 시즌> 등을 보면 그래도 이해할 수는 있다. 단지 선을 추구하는 모범생이 아니라 나름의 갈등과 고뇌를 통해서 정체성을 만들어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드라마로 만들어진 <스몰빌>이 성공한 이유도 그것이었다.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외계에서 왔고 다른 존재라는 이유만으로도 갈등을 겪는 사춘기의 슈퍼맨은 꽤 매력적이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여전히 답답하지만.

그런 점에서 모범생 보이스카웃인 슈퍼맨의 캐릭터를 역설적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은 마크 밀러의 <슈퍼맨:레드 선>이라는 생각도 든다. <슈퍼맨:레드 선>은 만약 크립톤에서 탈출한 슈퍼맨이 미국 캔자스 주의 스몰빌이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에 떨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상상한 작품이다. 스탈린에 이어 소련의 지도자가 된 슈퍼맨은 세계를 장악할 압도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배트맨과 미국의 대통령인 렉스 루터가 저항하지만, 인민을 위한 힘으로 세계를 평화롭게 만드는 것이 유일한 선이라고 믿는 슈퍼맨을 이길 수는 없다.





<원티드><킥애스>를 비롯하여 <울버린:올드맨 로건><얼티미츠> 등을 쓴 마크 밀러가 그려낸 사회주의자 슈퍼맨의 상상력은 그야말로 기발하고 웅대하다. 초월적 힘을 가진 존재가 절대적 권력을 갖게 된다면 세상은 과연 어떻게 될까. 초월자가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으면 세상은 자연스레 낙원이 될 것인가. <슈퍼맨:레드 선>은 슈퍼맨이라는 캐릭터를 한계까지 밀어붙인 탁월한 작품이다. 영화화될 가능성은 극히 낮지만.



김봉석
Que Sera Sera! 2017 부천영화제 프로그래머, 만화 웹진 에이코믹스 前 편집장, 익스트림무비. 나의 대중문화표류기,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전방위 글쓰기, 컬처매거진 브뤼트. 평론가라기보다 애호가. 주로 좋아하는 것들을 보고 듣고 쓴다.
만화와 영화 양쪽 분야의 전문가로 활발한 대외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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