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석 칼럼
영화 '로건'과는 다른 세계관의 깊이, <울버린:올드맨 로건>
by 김봉석
2017-03-20 09:31:47


마크 밀러 글/스티브 맥니븐 그림

지난 31일 국내에서도 개봉한 <로건>의 평이 대단히 좋다. <데드풀>에 이어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슈퍼히어로 영화이지만 흥행에도 성공했다. 엑스맨의 일원인 울버린의 단독 주연 영화는 그동안 혹평을 받아왔지만 휴 잭맨이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로건>으로 명예로운 퇴장을 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X-24인 로라가 울버린의 뒤를 이을 것인지, 다시 새로운 울버린이 등장하게 될 것인지 엑스맨 유니버스의 향방이 궁금하다.

<로건>의 원작으로는 <울버린:올드맨 로건>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 말을 믿고 <울버린:올드맨 로건>을 읽는다면 황당한 기분이 들 것이다. 늙어버린 울버린의 생각과 정서를 참조하며 느낌을 가져왔다면 일종의 원작으로 호칭되는 것이 가능하지만 애초에 이야기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영화 <로건>은 그동안 울버린 단독 영화는 물론 엑스맨 전체의 스토리에 이어지면서도 약간 다른 시간대의 울버린을 보여준다. 기본적으로는 영상화된 엑스맨 세계관에 기초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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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버린:올드맨 로건>은 기존 코믹스의 마블 유니버스와 엑스맨 유니버스에서도 일종의 외전이다. 빌런들이 연합하여 모든 슈퍼히어로를 파멸시킨 후의 세계. 북미 대륙은 킹핀과 닥터 둠, 매그니토 등이 지배하는 왕국들로 나뉘어져 있다. 아주 약간의 슈퍼히어로와 그들의 힘을 이어받은 자손들이 있기는 하지만 무력하거나 사악해졌다. 변절한 헐크가 그랬듯이. 로건은 절대로 자신의 클로를 꺼내지 않고 평범한 농부, 소작농으로 살아간다.

지대를 낼 돈이 없었던 로건은 가족을 지키기 위하여 호크아이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대륙을 횡단하여 어떤 물건을 배달하는 일을 도와준다면 돈을 준다는 것이다. 단 함께 가기만 할 뿐 절대로 클로를 꺼내지도, 싸움에 참여하지도 않는다는 조건. 여행은 매드 맥스의 탈주 이상으로 참혹하다. 이미 영웅은 존재하지 않고 모든 정의와 신념은 갈기갈기 찢겨진 세상을 목도한다.



마크 밀러가 쓰고, 스티브 맥니븐이 그린 <울버린:올드맨 로건>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이야기다. 종말은 이미 도래했고,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의 기억으로 고통 받는 주인공이 있다. 로건은 대체 왜 클로를 다시 꺼내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일까. 겹쳐지는 영화가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출하고 주연도 맡은 <용서받지 못한 자>. 이미 현업에서 은퇴한지 오래인 카우보이가 다시 현상금 사냥에 나선다. 하지만 과거의 영광은 시간 저 멀리로 사라져버렸다. 전설의 무법자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과거의 영광조차도 사실인지 확신할 수 없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미국의 신화였던 기존의 서부극을 비판하고 진짜서부의 이야기를 그린 수정주의 서부극의 대단원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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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버린:올드맨 로건>은 로건의 말년을 보여준다. 그가 왜 은둔자가 되려 했는지, 왜 가족을 지키기 위해 굴욕을 참아야만 했는지 말해준다. 그들의 정의가 대체 무엇이었고, 왜 세상은 지옥이 되었는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마크 밀러는 <시빌 워><얼티미츠>로 유명한 작가다. 선과 악이 싸우는 슈퍼히어로 코믹스가 아니라 각자의 신념과 맹신이 충돌하는 세계를 그린 작가. 마크 밀러는 또한 슈퍼맨이 미국이 아닌 소련에 태어났다면 어떤 영웅이 되었는지를 그린 <슈퍼맨:레드 선>과 현실의 슈퍼히어로는 어떤 존재일까를 그린 <킥애스>, 슈퍼빌런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원티드> 등을 그린 탁월한 현실감각과 상상력을 겸비한 작가다. 마크 밀러가 그린 <울버린:올드맨 로건>은 영화 이상으로 뛰어난 코믹스다. 영화와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화낼 필요가 없다. 오히려 또 다른 세계를 만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김봉석
Que Sera Sera! 2017 부천영화제 프로그래머, 만화 웹진 에이코믹스 前 편집장, 익스트림무비. 나의 대중문화표류기,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전방위 글쓰기, 컬처매거진 브뤼트. 평론가라기보다 애호가. 주로 좋아하는 것들을 보고 듣고 쓴다.
만화와 영화 양쪽 분야의 전문가로 활발한 대외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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