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떠벌이 사이코 히어로(?) <데드풀 Vol.1>
by 김봉석
2017-03-10 09:3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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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풀 Vol.1


브라이언 포센, 제리 더겐 글 / 토니 무어, 스콧 코블리시, 마이크 호손 그림

 

영웅담이 반드시 권선징악으로 끝나야 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선하고 도덕적인 영웅만 존재하던 시절도 까마득하다. 그럼에도 영웅은 영웅이다. 아무리 세상에 환멸을 느끼고 자신의 이익을 중심에 두는 반영웅이라도 최소한의 선을 지킨다. 영화로 만들어지는 슈퍼히어로물의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마니아 독자들이 많은 만화에서는 선과 악을 넘나드는 것은 물론 악의 모습 그대로 인기를 얻는 캐릭터도 있지만, 영화로 만들어지면 많은 관객을 확보하기 위해 지나치게 악하거나 도발적인 캐릭터는 피하게 된다.

영화 <앤트맨>에서 1대인 행크 핌이 아니라 2대 스콧 랭을 내세운 것도 그런 이유다. 만화에서 행크 핌은 천재적인 과학자이지만 아내인 와스프를 의심하고 폭행하는 의처증 환자이자 가정 폭행범이다. 그런 행크 핌을 온 가족이 보아야 하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주인공으로 하기는 힘들다. 도둑이지만 딸에 대한 극진한 애정을 가진 스콧 랭이 적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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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주류가 된 슈퍼히어로 영화는 과거에 비하면 스펙트럼이 다양해졌지만 그래도 개차반인 캐릭터를 내세우기란 쉽지 않다. 개인적인 고뇌와 갈등이 많아진 것일 뿐 슈퍼히어로의 본분을 지켜야만 한다. 코믹스의 팬이라면, 아니 팬이 아니라도 이런 슈퍼히어로의 규율이 지겨울 수 있다. 왜 더티 해리 같은 반영웅은 영화에서 불가능한 것일까? 영화보다는 드라마가 조금 앞서나간다. 넷플릭스의 데어데블은 악인을 잡기 위해 때로 극단적인 방법을 쓰기도 하고, 몇 편의 단독 영화가 만들어진 퍼니셔는 <데어 데블> 시즌 2에 등장하여 악당이라면 무조건 죽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드디어 <데드풀>이 등장했다. 근래 만들어진 슈퍼히어로 영화 중 보기 드물게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이었다. 전직 특수부대원이었고 지금은 킬러인 윌슨은 불치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된다. 병을 고치고 슈퍼히어로가 될 수 있다는 비밀 실험에 자원하지만 그것은 악당을 만드는 사설 기관이었다. 결국 슈퍼히어로가 되기는 했지만 부작용으로 얼굴이 일그러지고, 사랑하는 바네사에게 돌아가지도 못한다. <데드풀>은 슈퍼히어로 데드풀이 된 웨이드 윌슨이 자신을 추악한 모습으로 만든 아약스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다.

매력적인 떠벌이 사이코 히어로(?) <데드풀 Vol.1>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데드풀>의 재미는 줄거리가 아니라 시작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떠벌대는 데드풀의 말재간이다. 19금 농담에 온갖 사회문화적 아이콘을 끌어들여 퍼붓는 농담만으로도 흥미롭다. 자신이 출연했다 폭망한 DC<그린 랜턴>을 까는 것으로 시작하여 스타 워즈, 볼트론, 시네드 오코너, 프레디 크루거, 로지 오도넬, 리플리, <대부><로보캅>의 대사를 자유자재로 인용한다. 아이들은 들어도 모르고, 들어서도 안 되는 성적 농담도 많다. 번역에서는 그런 서브컬처를 인용한 농담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90년대에 등장해 인기를 얻은 데드풀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사이코다. 최악의 상황에도 농담을 지껄이고, 모든 권위와 질서를 무시하고, 악당이건 아군이건 필요하면 죽인다. 어떤 거리낌도 없고, 책임감도 거의 없다. 울버린을 능가하는 재생능력으로 총에 맞거나 팔다리가 떨어져나가도 살아난다. 어딘가에 갇혀 수백 년을 지나도 죽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데드풀 자신이 만화 캐릭터임을 알고 있다는 사실. 영화건, 만화건 관객이나 독자에게 말을 거는 것은 금기다. 그러나 데드풀은 수시로 독자에게 말을 걸고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생각인지 말한다. <데드 풀:마블 유니버스 죽이기>는 데드풀이 마블 유니버스 전체를 붕괴시키려고 난동을 피우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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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엉망진창인 슈퍼히어로 데드풀을 제대로 만날 수 있는 작품은 마블 나우에서 시작된 <데드풀 Vol.1>이다. 마법사가 미국의 대통령들을 모두 죽음에서 소환하여 엉망진창이 된다. 아무리 괴물이라도 대통령의 모습을 한 그들을 죽이는 것을 슈퍼히어로에게 맡길 수 없어 데드풀에게 맡긴다. 성공해도 명예는 없고, 실패하면 혼자 뒤집어쓰는 대신 돈을 받는다. 그렇게 시작된 <데드풀>은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친다. 미국 문화의 적나라한 모습을 데드풀이 대변하고 또 조롱하는 광경을 보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김봉석
Que Sera Sera! 2017 부천영화제 프로그래머, 만화 웹진 에이코믹스 前 편집장, 익스트림무비. 나의 대중문화표류기,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전방위 글쓰기, 컬처매거진 브뤼트. 평론가라기보다 애호가. 주로 좋아하는 것들을 보고 듣고 쓴다.
만화와 영화 양쪽 분야의 전문가로 활발한 대외 활동을 하고 있다.
댓글 1
  • jing_q
    (2018-06-21 14:59:08 )
    웃픈 사회상을 대변하는 히어로가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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