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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찬 가슴을 안고 소개합니다. - [스포] 수평선
by 므르므즈
2016-08-30 17: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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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워터십다운의 열한마리 토끼들]의 본문 글을 읽다보면 재밌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누군가 이 책을 소개하며  '벅찬 가슴을 안고 명작의 탄생을 알립니다.' 라는 찬양에 가까운 글을 썼기 때문에 가족들에게 벅찬 가슴을 안고~ 로 시작하는 말로 농을 들어야 했다는 것이다. 참 부러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명작의 탄생이란 찬사로 놀림을 받을 수 있다니 그런 사치를 누릴수 있다면 다시 태어나도 좋다. 이렇게 인상적인 문장이었기에 개인적으로 인용을 자주하는 문장이다. 이번에도 한 번 써먹어보자면, 벅찬 가슴을 안고 명작의 탄생을 알립니다.

 

  전쟁 통에 소년이 어느 소녀를 만나고 둘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죽을 고비를 헤쳐나간다. 이 과정에서 둘 사이엔 사랑이 씩트고 둘은 마지막엔 아기 하나를 품에 안고 수평선을 바라보는 결말은 맞이해야겠지만, 작품은 그런 클리셰를 사양하고 다른 방향에서 이 둘의 여정을 다룬다. 지금껏 생존기를 다룬 작품들이 당연히 삶에 집중했다면 [수평선]에선 역으로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한다.

 

  죽음. 그것은 친숙하면서도 낯선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이건 마치 미래 계획 같은 데 남의 것엔 참견 잘하면서도 한 번도 자신에게 닥쳐오는 의미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어디서든 볼 수 있기에 죽음은 친숙하고, 경험할 수 없기에 죽음은 낯설다. 그리고 그렇기에, 여러 방면에서 볼 수 있기에 죽음은 다양한 속성을 가지고, 대중문화는 다양한 관점에서 죽음을 다루게 된다. [수평선]에서 죽음을 다루는 시선은 고독과 성장이라 말할 수 있다.

 

  염세주의자, 비관론자. 뭐든지 다 안될거야 말하는 a씨 어찌됐건 모두 기피하고 싶은 대상이다. 어차피 죽을텐데 왜 사나.식으로 삶을 낭비하는 것도 썩 보기좋은 광경은 아니다. 확실히, 어떻게든 살아가겠다며 아둥바둥하는 캐릭터가 더 멋지고 매력적인 건 분명하다. 작품에선 죽음을 통해 이런 아둥바둥한 캐릭터가 염세주의자로 처절하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변인이 모두 죽고 의지하던 사람마저 허무하게 잃은 사람이 이젠 안될거라며 자포자기하며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매력적인 캐릭터가 갑작스레 그 매력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도 볼만하지만 다시 성장에 이르는 과정 역시 볼만한 법이다. 수평선에서  캐릭터가 죽음의 허무함을 부정하고 인간 찬가를 외치며 다시 일어서는 성장의 순간은 어느 작품 보다 감동적이다. 그리고 이 감동의 주춧돌은 미려한 작화와 뛰어난 연출이다.

 

  연출. 이 작품의 연출은 어느 작품보다 감정적으로 뛰어나다. 매 순간순간 아름다움을 극대화 시키고, 등장인물의 감정을 놓치지 않고 뽑아낸다. 자칫 지루하거나 어색해질 수 있는 독백을 한장의 그림으로 충격적인 대사로 탈바꿈시키는 작가의 솜씨를 보다보면 감탄이 나올 정도다. 단순한 스토리인데도, 정말 단순한 스토리인데도 컷을 따르는 충격과 감동으로 작가는 이 작품의 메시지에 강력한 설득력을 부여한다. 우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가치있고, 결코 의미없는 존재가 아니다. 이 단순한 메시지가 그림 하나로 설득력을 얻게 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지만. 나는 그 장면을 보는 순간이 아깝지 않았다.

 

  수평선은 이런 연출 중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노킹 온 헤븐즈 도어]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수평선은 곧 죽음과 삶의 경계가 된다. 이 곳은 주인공이 모든 삶의 희망을 잃어버리고 주저 앉은 곳이자, 손길을 거부한 곳이자. 다시 한번 삶의 희망을 얻은 곳이다.  그리고 애초에 주인공이 도달해야 될 목표였던 곳이자, 새로운 삶의 가치를 후대에 전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수평선은 제목으로도 핵심적인 배경으로도 알맞은 공간이었으며, 가장 인상적인 공간이었다.

 

  그렇지만 아쉬운 점이 없다곤 할 수 없으리라. 중간 전개가 급한 것이 아쉬웠고, 너무짧아 더는 이 작품을 볼 수 없단 것이 아쉬웠다. 이런 감성이 북받치는 야심한 밤에, 당신도 코미카로 가서 [수평선]을 감상하는 것은 어떨까?

  

므르므즈
웹툰작가 지망생. 글 좀 쓰는 편이다.
자신만의 뚜렷한 관점으로 웹툰을 평가해주는 개성만점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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